[새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 30선]<26>삼한지

  • 입력 2008년 2월 14일 02시 58분


《“이것은 우리 역사의 밤하늘에 한 무리 휘황한 별자리를 이룬 시대, 그 눈부시게 찬란한 우리 영웅들의 이야기다. 이 땅에 태어나 살다가 하늘로 돌아가 별이 된 사람들, 나는 사서(史書)의 행간과 이면에서 그들이 뿜어내는 영롱한 빛을 그대로 백지에 옮기려 노력했다.”》

“삼한의 땅 비록 험하고 거칠어도/어디선가 무리를 이끌고 창해를 건너와/솥발 같은 형세로 나라를 세우고…세월은 무상하여 천 년이 다시 흐르고/고구려 백제 신라 다 없어졌거늘/원통하여라, 갈가리 찢어진 오늘의 형세여/허물어진 왕성 옆 잡초 우거진 무덤가에는 뒷사람의 어지러운 수작만 극성하여 장부들의 곤한 꿈자리를 휘젓나니”

비장한 서사시로 시작하는 이 대하소설은 고교 시절 지루했던 국사 시간의 기억을 단숨에 날린다.

누구나 한 번쯤 삼국지에 푹 빠져 지낸 날들이 있을 것이다. ‘삼한지’는 삼국지의 감동과 재미에 견줄 우리 역사소설이다. 관우와 장비의 무용담, 제갈공명의 명석함과 신비로움 같은 군웅할거의 고대사를 동경하게 해줄 우리 작품이 없다고 한탄하지 않아도 된다.

‘삼한지’는 부족국가 시대를 끝내고 중앙집권 체제로 들어선 삼국이 대립과 경쟁 속에서 세력을 확장해 갔던 6, 7세기 100년의 역사를 박진감 있게 재구성했다.

고구려의 호방하고 활달한 기상, 군사대국이자 문화강국이었던 백제, 약소국이었지만 활발한 외교정책으로 기어코 통일을 이뤄낸 신라의 얽히고설킨 경쟁이 철저한 역사고증을 바탕으로 펼쳐진다. 삼한(三韓)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말로 삼국의 다른 이름이다.

이 웅대한 서사시에 영웅들이 빠질 수 없다. 수양제의 100만 대군을 격파한 을지문덕은 탁월한 리더십의 소유자로 묘사된다. 연개소문은 신출귀몰한 카리스마의 장수로, 백제 무왕은 지략과 용맹을 겸비한 군주로, 김춘추는 탁월한 외교적 수완을 갖춘 인물로 등장한다. 이들의 야망과 집념, 암투와 권모술수…. 인간 사회의 진면목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저자는 신라가 당의 도움을 받아 삼국을 통일한 것을 두고 외세를 등에 업었다고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한다. 당시 삼국은 전혀 다른 나라였다. 민족, 동족 개념이 없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며 공동체의식, 민족의식이 생겨났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삼한지’는 이 과정을 묘사한 문학작품이다.

무엇보다 ‘삼한지’는 오늘날 국가 외교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삼한지’의 영웅들은 각기 다른 두 나라와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지, 중국의 영향력을 어떻게 활용하고 차단할지 고심하고 전략에 응용했다. 신라는 취약한 군사력을 만회하기 위해 삼국 중 가장 적극적으로 외교에 주력한 덕분에 통일을 이뤘다. 신라가 고집스럽게 고립주의를 표방했다면 삼국통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외교는 한 나라의 생존과 번영을 결정하는 중요한 국가전략이다. 평화와 긴장, 동맹과 적대를 오가는 외교전략의 수완이야말로 21세기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이 ‘삼한지’를 추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삼국이 경쟁하고 통일하는 과정에서 지도자의 외교 리더십이 어떻게 발현됐는지 소설이지만 매우 교육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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