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찰서 현판 또 바꾸는 예산 5억 원 아깝다

  • 입력 2008년 2월 17일 22시 55분


경찰청장이 바뀔 때마다 전국 경찰서에 신임 청장의 지휘 방침을 넣은 현판을 수억 원을 들여 새로 바꿔 다는 구태(舊態)가 반복되고 있다. 경찰청은 어청수 신임 청장이 취임한 이달 11일 전국 2300여 경찰관서의 현판을 모두 교체하기 위해 전임 이택순 청장의 지휘 방침이 새겨진 현판을 떼어내도록 조치했다. 불과 2년 전에 5억 원을 들여 만든 현판들이 쓰레기로 변해버린 것이다.

어 청장 이전에도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경찰관서의 현판이 세 번 교체됐다. 여기에 들어간 국민세금은 모두 14억3000여만 원이었다. 경찰청은 새 현판에 쓸 구호를 공모하고 있다. 경찰청은 현판이 대국민 홍보용이라고 주장하지만 세금을 쓸데없이 낭비하는 전시행정이라는 측면이 더 강하다.

이 전 청장은 ‘믿음직한 경찰, 안전한 나라’라는 구호가 적힌 현판을 전국 경찰서 건물에 걸도록 했다. 전임 허준영 청장 때는 ‘최상의 치안 서비스를 위해’, 그 전임인 최기문 청장 때는 ‘함께 하는 치안, 편안한 나라’였다. 다 좋은 말이지만 청장이 바뀔 때마다 경찰의 직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전 청장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과 관련해 거짓말을 했다가 검찰 조사를 받는 수모를 겪었다. 최 전 청장은 김 회장 사건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청탁한 혐의로 지난달 24일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모두 자신들이 내건 현판의 문구와는 다른 처신을 하다가 경찰 조직 전체의 신뢰를 추락시켰다. 경찰 관련 비리도 하루가 멀다 하게 터져 나온다. 국민의 불신을 받는 데 대한 경찰의 자성과 내부개혁이 더 급하다. 현판 바꾸기보다는 경찰 윤리를 바로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그럴듯한 구호가 적힌 현판을 내거는 기관은 경찰만이 아니다. 전국 세무서에는 ‘국민이 공감하는 따뜻한 세정’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청사에 구호용 현판을 붙이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관공서 현판은 생색내기용이거나 국민을 계몽 대상으로 여기는 관존민비(官尊民卑) 의식의 소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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