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문명]아! 선효선 소령

  • 입력 2008년 2월 23일 02시 59분


19일 오후 9시경 강원도 모 부대 소속 윤모 상병이 머리를 감다 수도꼭지에 머리를 부딪혀 뇌출혈 판정을 받았다. 수술 장비가 있는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으로 급히 이송해야 했다. 출산휴가를 마치고 부대에 복귀한 지 석 달 된 간호장교 선효선(28) 소령(당시 대위)은 “급한 환자가 있으면 언제라도 부르라”고 말하고 퇴근했다. 오후 11시 55분 시어머니에게 늦은 안부를 전하고 막 잠자리에 들려던 참에 호출을 받은 선 소령은 운동복 차림으로 달려가 헬기에 동승했다.

▷선 소령은 한 시간 뒤인 20일 0시 55분 윤 상병을 무사히 이송하고 귀대 헬기에 몸을 실었다. 이륙 15분 만에 용문산 자락으로 접어든 헬기가 갑자기 요동을 쳤다. 7명의 군인을 실은 헬기가 순식간에 짙은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사고 현장에는 매직으로 쓴 ‘선효선’이라는 글씨가 선명한 군용 가방과 신발만 나뒹굴고 있었다. 선 소령은 두 딸, 세 살짜리 은채와 난 지 6개월 된 은결이를 남기고 가버렸다.

▷동료 한 명을 구하느라 일곱 명이 목숨을 잃은 이번 헬기 참사는 미국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연상시킨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적진에서 실종된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특공대원 여덟 명이 투입된다. 대원들은 ‘일등병 한 명이 특공대원 여덟 명 목숨보다 중요한가’라고 반문도 했지만, 사투를 벌이고 있을 라이언을 구하기 위해 위험한 작전을 수행한다. 결국 라이언은 구했지만 세 명이 목숨을 잃는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전쟁터에서 전우들 간에 피어나는 휴머니즘이 잔잔한 감동을 낳았다.

▷1995년 보스니아 전쟁 때 미 공군 조종사 스콧 오그래디 대위가 대공포에 맞아 적진에 떨어졌다. 10여 명의 해병 특공대가 적진에 투입돼 오그래디 대위를 구출한다. 오그래디 대위는 구출된 뒤 “조국과 동료들이 나를 그냥 버려둘 것이라고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록 2차 대전이나 보스니아 전쟁처럼 긴박한 전쟁터는 아니었지만 선 소령과 동료들의 살신성인은 뜨거운 동지애를 보여준다. 선 소령, 정재훈 소령, 신기용, 황갑주 준위, 김범진, 최낙경 병장, 이세인 상병의 명복을 빈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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