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평양 굴지의 부자로 백 과부라는 여성이 있었다. 16세 때 남편과 사별한 뒤 평생 홀몸으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수전노라고 손가락질을 받던 그는 환갑을 맞던 해에 비로소 자선활동을 시작했다. 학교에 거액을 기부하고 평양 시내에 큰 공회당을 세웠다. 그가 1933년 8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회에 기부한 돈은 요즘 돈 가치로 300억 원이 넘었다. 전 재산을 아낌없이 베풀고 떠난 것이다. 그의 장례식에는 평양 시민 1만 명이 참석해 애도했다.
▷이처럼 자선과 기부는 마음에서 우러나왔을 때 아름답다. 엊그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선 재산 환원과 관련된 거북한 장면이 연출됐다. 민주당 손봉숙 의원이 재산이 140억 원에 이르는 유 후보자에게 “연극인을 위해 사재 출연 의사가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유 후보자는 바로 “있다”고 대답했다. 손 의원의 질문은 청문회장이라는 자리의 성격상으로도 적절치 않았다. 유 후보자가 ‘없다’고 답했으면 또 어떤 추가 질문을 했을까. 손 의원 자신은 많건 적건 간에 세상을 위해 사재를 출연한다든지, 아름다운 기부를 많이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유 후보자가 기부를 해도 연극인들이 내켜하지 않을 것 같다. ‘강요된 기부’나 ‘대가를 바라는 기부’는 아름답지 않다. 도움 받는 쪽의 기분도 배려할 줄 알았던 옛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 받는 사람도 진심으로 고마워했던 순박함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부자들의 자발적인 기부 문화가 꽃피어야 하겠지만 정치 사회적으로 강압하듯 몰아가는 것은 볼썽사납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