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원군이 모수를 데려가 동맹외교에 성공한 뒤부터 ‘쓸 만한 사람’은 낭중지추(囊中之錐·자루 속의 송곳)라고 불렸다. 세종대왕 때 황희 정승은 거꾸로 자신을 ‘승핍(承乏·재능 없는 사람이 벼슬을 하고 있음)’이라고 깎아내리며 사퇴하려다 왕의 윤허를 받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당나라 덕종(德宗)은 내란을 피해 달아나면서 한 백성이 과일을 바치자 그에게 관직을 주려다 언관(言官)인 육지(陸贄)의 간언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공직사회든 기업이든 숨은 인재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최적임자를 골라낼 수만 있다면 자천 타천을 가릴 이유가 없다. 인사(人事)야말로 만사(萬事)이기 때문이다. 자천(自薦)도 인재 발굴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스스로 적임자라고 나서는 사람은 일단 경계해봄 직하다. 뒷전에서 연줄이나 뇌물까지 동원하는 사람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초 “인사 청탁을 하면 패가망신 시키겠다”고 큰소리쳤지만 5년간 그런 사례는 들어보지 못했다.
▷정상적 절차를 통한 인사추천과 부정한 방법을 동원한 인사청탁은 구별된다. 농협이 직원인사를 앞두고 외부에 줄을 댄 청탁자 110명에게 경고장을 보냈다고 한다. 해당자는 두고두고 인사에 불이익을 받게 될 처지다. 뿌리 깊은 인사청탁의 악폐가 그 정도로 사라질지 의문이지만 그 의지는 평가할 만하다. 이명박 정부는 첫 내각 인사에서 이미 3명의 장관 후보를 잃었다. 인사시스템이 고장 나면 망사(亡事)가 될 수 있다는 값비싼 교훈이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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