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포커스/폴 케네디]美의 亞겨냥 신무기, 부메랑 될라

  • 입력 2008년 3월 4일 02시 59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몇 년 전, 영국 해군을 지휘했던 재키 피셔 제독은 당시 최신무기였던 잠수함의 대규모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이 신무기가 독일 북해함대의 북해 장악 기도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서 밸포어 총리는 생각이 달랐다. 밸포어 총리는 오히려 훗날 독일도 잠수함을 개발할 경우 대영제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것으로 우려했다.

시간이 흐른 뒤 밸포어 총리가 선견지명을 지녔던 것으로 판명됐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독일 해군의 잠수함인 ‘유보트’는 영국과 연합군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다.

최근 ‘미 해군의 믿을 수 없는 공상무기 실험(Navy Tests Incredible Sci-Fi Weapon)’이라는 제목의 라이브사이언스닷컴 보도를 접한 뒤 피셔 제독과 밸포어 총리의 논쟁을 떠올렸다.

이 기사에서 내 마음을 괴롭혔던 것은 ‘레일건’이라는 새로운 무기다. 고속전자기력을 사용한 총기로 입자가속총 또는 전자장 발사기라고도 불린다. 발사된 운동에너지는 ‘탄환’처럼 초음속으로 370km(230마일) 이상을 날아갈 수 있다. 한마디로 (기존 화기와 같은) 폭발이 없이 적국 진영을 초토화시키는 괴력의 무기다.

현재 미 해군의 대표적인 병력 체제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 니미츠와 같은 세계 최대 규모의 핵추진 항공모함과 핵추진 잠수함이 이 두 가지에 해당된다.

중국을 비롯해 인도, 이란 등 미국의 해상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국가들의 해군도 이들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각국이 다음 세대를 위해 항공모함 건조 계획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현재 이들은 ‘비대칭 무기’ 개발에 더 집중하고 있다. 탐지가 되지 않는 ‘스텔스 잠수함’과 해저 미사일 등이 그것이다. 미 국방부는 이 같은 움직임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레일건이 미국에만 있고 다른 나라엔 없다면 향후 지역 분쟁에서 미군이 승승장구하며 이권을 챙길 것이 확실하다. 페르시아 만에 배치된 이 ‘공상무기’는 실제 이란의 군사 지도자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거위 요리 양념은 기러기 요리에도 똑같이 쓸 수 있다’는 옛 속담이 있다. 레일건이 당장은 미국에 이익을 가져다주겠지만 만약 다른 국가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앞서 언급한 중국과 인도, 이란 등은 미국이나 러시아처럼 방대한 규모의 과학자와 기술자, 연구기관, 자본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핵추진 항공모함 개발을 단기간에 성공했듯이 레일건도 빠른 시일 안에 개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 나라들이 스스로 레일건을 개발하거나 사들이게 된다고 가정해 보자.

오늘날 미국은 특별한 순간을 맞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정책은 세계 곳곳에서 적대감을 야기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이 가진 힘의 근원은 이데올로기나 문화적 매력을 의미하는 ‘소프트파워’가 아닌 군사적 지배력과 상통하는 ‘하드파워’에 있다. 그러나 그 역사적인 순간은 이미 끝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피셔 제독과 밸포어 총리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던 당시엔 영국 해군이 독일 북해함대보다 전력 면에서 앞서 있었다. 그러나 잠수함이라는 새 무기가 도입된 뒤 그 힘의 체계는 뒤집혔다. 레일건을 이용한 무장도 이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경이로운 무기들이 후손들에게는 나쁜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구매자 위험 부담(Caveat Emptor)’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폴 케네디 역사학자·예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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