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만 보고 표 찍나?
이쯤 되면 한반도 대운하는 ‘총선 상품’이다. 그것도 그 어떤 상표보다 차별성이 뚜렷하다. 고객(유권자)의 관심을 끌 만하다. 하지만 찬반(贊反)을 떠나 대운하의 총선 상품화가 과연 적절한 것인가. 아니라고 본다.
그 점에서 필자는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의 말에 동의한다. 단, 조건이 있다. 총선에서 과반수가 되더라도 그것을 내세워 대운하 건설을 밀어붙이려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야당 또한 냉정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가령 한나라당이 대운하 건설을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다고 치자. 그리고 과반수 승리를 한다고 치자. 그러면 야당은 군소리 없이 대운하 건설에 손을 들어주겠는가. 아닐 것이다. 당연히 총선 민의(民意)와 대운하 건설은 별개라며 반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총선 공약에서 대운하를 뺐다고 비난만 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총선 이후 예상되는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드라이브’를 제동할 수 있는 브레이크로 삼으면 된다.
‘당신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한나라당이 대운하 건설을 총선 공약으로 내걸면 과반수가 물 건너 갈 판에.’ 야당 사람들은 이렇게 핏대를 세울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럴까? 단적인 예로 서울 은평을에서 한나라당 실세라는 이재오 의원이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에게 밀리고 있는 이유가 단지 ‘대운하 전도사’ 대(對) ‘대운하 반대론자’의 결과일까? 아닐 것이다. 그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이 글의 취지가 아니다. 그저 ‘실세’에 대한 거부감이 주 요인이 아닐까 하는 짧은 추정(推定)을 덧붙일 수밖에.
대선에서 이겼다고 모든 대선 공약이 추인(追認)되는 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공약을 보고 표를 몰아준 것도 아닐 것이다. 같은 이치로 지역의 대표를 뽑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운하가 선택의 절대기준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도대체 대운하만 보고 표를 찍을 유권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대운하를 총선에 연계시키는 것 자체가 정략적인 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사실상의 수도 이전인 행정수도 건설을 공약했다. 충청표를 얻기 위한 급조(急造)된 공약이었고, 노 전 대통령이 말했듯이 “좀 재미를 봤다”.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수도 이전을 위헌(違憲)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헌재의 결정을 따랐어야 했다. ‘나는 약속을 지키고 싶지만 헌재가 안 된다고 하니 어쩌겠느냐’, 그렇게 충청도민에게 양해를 구하고 교육과학 도시 같은 새로운 청사진으로 공약을 대신해야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고집했고, 이듬해 3월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을 밀어붙였다. 충청표를 의식한 한나라당도 별 반대를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서울 대통령, 충청 총리’로 수도가 양분(兩分)되게 됐다. 반쪽 수도 이전은 두고두고 행정의 비효율과 경제적 낭비라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공약에 대한 권력의 집착이 되돌릴 수 없는 국가 부담이 된 것이다.
하지 말라면 하지 말라
이명박 정부는 행정수도와 대운하는 성격이 다르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대운하가 우리의 미래 세대에 미칠 영향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대운하 건설을 섣불리 결정해서도 안 되고, 밀어붙여선 더욱 안 된다. 총선 이후 원점에서 검토해 국민이 해도 좋다고 할 때 해야 한다. 하지 말라면 말아야 한다. 대운하는 ‘총선 상품’이 아니다.
전진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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