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성은 신체와는 무관한가. 인간의 의지는 근본적으로 자유로운가. 인간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성을 갖고 있는가.
조지 레이코프의 ‘몸의 철학’은 인간 철학에 대한 전통적인 서구적 관념에 대한 의문으로 채워진 저서다. 레이코프는 언어학과 인지과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저명한 언어학자. 그의 연구는 최근 인지과학적 탐구 성과를 이용하며 탈(脫)신체화된 이성과 사고를 주장하는 데카르트를 주된 공격의 표적으로 삼고 있다.
이 책은 인지과학의 주요 발견 세 가지를 거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건 △마음은 신체화되어 있고 △사고는 대부분 무의식적이며 △추상적 개념들은 대체로 은유적이라는 내용이다.
우선, 신체화된 마음은 이 책의 핵심 개념이다. 그는 “지각이나 운동과 같은 신체 능력과 독립적인 이성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며 이성(reason)은 근본적으로 신체화되어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지각 작용과 개념 작용이 뚜렷하게 구분될 수 없으며 그 과정은 대부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진행된다. 쉽게는 우리가 생각할 때 개개의 뉴런(신경계를 이루는 기본 세포)의 작용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이들을 자유로이 사용하는 것처럼 사고와 신체의 긴밀한 연결은 무의식적이라는 말이다.
‘개념’이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범주들을 정신적으로 특징짓고 그것들에 대해 사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신경구조이며 신체화된 개념은 실제로 우리 두뇌의 감각 운동계의 일부나 그 운동계를 이용하는 신경구조다.
개념적 추론의 많은 부분은 감각 운동 추론이다. 각 차원에서 신경구조 및 감각운동계 신경구조에 의한 감각 추론의 알고리즘(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또는 어떤 일을 진행하기 위한 절차나 방법)은 현재 과학 연구로 밝혀지는 중이며 실제로 어떻게 이런 과제들이 수행되고 있는지가 생각만큼 모호하거나 알 수 없는 과정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뇌과학의 연구자들은 인간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까지 뇌세포의 움직임으로 파악하며 심지어 조작까지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레이코프는 인간이 갖는 대표적 정신적 영역인 ‘영성(靈性)’도 신체화에서 독립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영적 경험을 정열적으로 만들고 거기에 치열한 욕구와 즐거움 고통 환희 등을 가져오는 것은 몸이라는 견해다. 이러한 감각들 없이는 영성이 완벽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세계의 전통들에서 성 예술 음악 춤 음식은 명상이나 기도와 마찬가지로 수천 년 동안 영적 경험의 행태였음을 상기시킨다.
900쪽에 걸쳐 그림 자료 하나 없이 글자로 빼곡하게 채워진 방대한 분량 때문에 이 책은 읽기에 다소 부담스럽다. 그러나 최근 서구 철학계에서 활발하게 논의 중인 인지과학, 몸에 대한 철학의 재정립 움직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시간을 투자해볼 만한 책이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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