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된 통합민주당과 언론·문화·체육계 등의 좌파정권 식객(食客)세력은 자기네 10년의 잘못보다 이 정권 3개월의 문제를 더 크게 부각시키는 데 상당히 성공하고 있다. 민주당은 반성문 한 장 없이 ‘노무현 탄돌이’들을 대거 재공천하고도 ‘개혁 공천’으로 분칠한다. 좌파 식객들은 새 정권에 선제공격까지 서슴지 않으며 기득권 수호의 진지(陣地)를 구축하고 있다.
이 대통령 첫 인사(人事)의 부분 실패, 외래(外來) 장차관을 ‘섬기는 듯 길들이는’ 관료들의 기술, 정부와 사회 각계에 뿌리내린 다단계 좌파 네트워크가 맞물려 아직도 ‘노명박 정권’이라는 말이 남아있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 공천을 전리품(戰利品)처럼 분배하는 과정에서 새 정권 내부의 권력투쟁이 표면화했다. 명실상부한 정권교체는 못한 상황에서 정권 내 정적(政敵)치기에 바쁜 꼴이다.
이재오, 이방호 씨 그리고 이상득, 강재섭 씨는 각자의 ‘공천 지분’을 그런대로 챙기는 듯했다. 그러나 비주류이면서도 급수(級數)가 높은 박근혜 전 대표 세력을 분노케 한 것은 이들의 오만이 낳은 천려일실(千慮一失)이었다. 이제 이 대통령 휘하의 누군가가 박 전 대표에게 선거전(戰)에 힘을 보태달라고 졸라야할 판이지만 그런 인맥조차 공천 과정에서 대부분 청소해버렸다.
人事와 정치 ‘아픈 학습 3개월’
공당(公黨)에 있어선 안 될 것이지만, 한나라당의 당내당(黨內黨) 같은 존재가 박근혜 지지세력이다. 이들은 탈당을 했어도 ‘박근혜 당외당(黨外黨)’으로 세력을 키우고 있다. 이런 현상은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장래에 약(藥)이 될 수도, 독(毒)이 될 수도 있지만 아무튼 지금은 그가 화 한번 내자 현역 당 대표가 불출마를 선언하는 상황이다.
내가 보기에 이 정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잘 들어선 정부다. 내정 및 외교 문제에 상대적으로 안정감 있게 대처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를 지키려는 자세가 분명하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인(信認)도 현저히 높아지고 있다. 전(前) 정부가 보여준 것과 같은 국정운영의 아슬아슬함은 많이 줄었다.
그럼에도 국민은 정부가 큰 흐름에서 잘하는 것보다 작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천둥벌거숭이 같던 노(盧)정권의 좌충우돌에 지쳐 정권을 교체했지만 지난날의 고통은 어느덧 잊고, 새 정권의 허물을 확대해서 본다. 그렇다고 정부가 이런 국민을 탓해서는 안 된다.
어느 정권이건 일단 권좌에 오르면 싫건 좋건 ‘내 탓’부터 해야 한다. 국가경영 ‘권한의 대주주(大株主)’는 동전의 양면처럼 ‘책임의 대주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임 노 정권은 무능하기도 했지만 ‘남 탓’으로 일관한 책임의식 실종 때문에 국민의 미움을 더 샀고, 결국 실패했다.
이 정부 사람들 사이에도 국민의 큰 성원에 대한 고마움은 잊고, 작은 비판의 민성(民聲)에 섭섭함을 드러내는 조짐이 벌써부터 보인다. 비판받는 요인을 자성(自省)하기는커녕 국민과 불화(不和)하기 시작하면 국회 안정의석을 확보하더라도 국정을 풀어가기 어려워진다.
그에 앞서 정권 내분(內紛)을 금명간 진정시키지 못하면 4·9총선에서의 한나라당 처지가 더 피곤해질 것이다. 적지 않은 국민은 ‘힘만 실어주면 오만해지는 사람들에게 과반의석을 줘야하나’ 고민하고 있다. 공천 갈등에 원인을 제공한 핵심인물들이 결자해지(結者解之)하라는 것이 민심의 대세 같다. 이를 거부하면 그만한 코스트를 치를 수밖에 없다.
順理로 민심 얻는 게 최대의 힘
이 대통령은 누구와 손잡고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할지도 모르겠지만, 세대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순리(順理)와 합리로 다수 국민의 호응을 얻고, 그 힘으로 여당을 결속시키며 야당을 설득한다면 꼭 지난날의 심복이나 후견인이 없더라도 안정된 정치를 할 수 있다. 당을 일사불란하게 장악하겠다는 과욕은 가장 위험하고, 이미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이 대통령이 인재 등용과 정치의 본질에 접근하는 유익한 학습을 했다면, 지난 3개월의 경험은 향후 5년의 성공을 위해 ‘쓰지만 좋은 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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