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58년 만에 82세 新婦에게 돌아온 故 강태수 일병

  • 입력 2008년 3월 28일 03시 02분


1950년 6·25전쟁 초기 북한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강태수, 김재홍 일병의 유해가 58년 만에 가족에게 돌아왔다. 강 일병은 전쟁 당시 꽃다운 신부였던 민정희(82) 할머니 품에 한줌의 재로 안겼다. 17세에 시집와 아들 하나를 두고 평생 수절한 할머니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남편이 살아온 것 같다”고 했다. 총탄 자국이 선명한 수통과 손목시계, 숟가락 등의 유품이 치열했던 전투 순간을 증언한다.

두 병사의 경우는 우리 군(軍)이 아무런 단서 없이, 축적된 유전자(DNA) 자료만으로 신원을 확인한 첫 사례다. 국군수도병원이 신원 확인이 어려운 유해가 발굴됐을 경우에 대비해 평소 가족들의 피를 채취해 보관해 온 덕이다. 격전지였던 충북 영동과 강원 양양 전투에서 전사해 그동안 산천을 떠돌았을 두 병사의 영령도 이제 편히 잠들 수 있을 것이다.

강 일병은 전사하기 직전 형에게 “어찌 부모님과 동기간, 처자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마는…, 나라에 바친 이내 몸이오, 한시바삐 삼팔선을 부수고…”하는 편지를 보낸 사실이 확인됐다. 가족을 그리워하면서도 먼저 조국을 지키려고 했던 충정이 우리를 숙연케 한다.

6·25 전몰장병의 유해는 발굴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2000년 이후 1635구가 발굴됐다. 그러나 신원이 확인된 경우는 이번까지 72구에 불과하다. 아직도 전국에는 10만 이상의 전사자가 발굴을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국은 유해 발굴과 신원 및 가족확인 작업에 더욱 힘을 내야 한다. 아울러 북한에 억류돼 있는 국군포로 송환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일과 병상의 상이(傷痍)용사 치료 및 복지대책에도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국군장병을 명예롭게 하고 그 가족을 돌보는 것은 국가의 최소한의 책무다. 국가가 전장(戰場)에서 산화한 장병의 유해를 끝까지 회수하려는 노력을 보일 때 국민은 기꺼이 나라를 지키려 할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어우러질 때 안보도 번영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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