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폴 크루그먼]‘값싼 식량’시대 다시 올 확률

  • 입력 2008년 4월 11일 02시 59분


요즘 세계 금융위기에 대해 말들이 많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볼 또 다른 세계적인 위기가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식량위기다. 지난 몇 년간 밀 옥수수 쌀 등 기초식량 가격이 두세 배로 뛰어올랐다. 특히 최근 몇 달 동안에는 급등세를 이어갔다. 식량 가격의 폭등은 잘사는 선진국에도 근심을 안겨주지만 가구 지출의 절반 이상을 식량 구매에 쓰는 빈국에는 특히 심각한 재앙이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식량 폭동이 발생하고 있다. 곡물 수출국들은 자국 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출을 제한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어쩌다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장기적 추세와 불운, 잘못된 정책이 겹쳤기 때문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문제들부터 생각해 보자.

첫째, 중국 등 신흥경제국에서 부유해진 중산층이 늘면서 식량 수요가 급증했다. 100Cal의 열량을 내는 쇠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700Cal의 사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신흥국가들의 식생활 변화로 인해 전체적으로 곡물 수요가 늘었다.

둘째, 고유가 추세다. 현대 농업은 에너지 집약산업이다. 비료 생산, 농기계 가동, 농산물 수송 등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배럴당 100달러를 넘는 유가의 고공행진은 농업 생산비용을 높이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고유가는 중국 등 신흥경제국의 성장 때문이기도 하다. 경제성장에 따른 에너지 확보 경쟁이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셋째, 세계 2위의 곡물 수출국인 호주에서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는 등 주요 경작지역의 악천후도 한몫했다.

이 세 가지 요인은 사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러나 누구의 책임도 없다는 것이 전적으로 맞는 말은 아니다. 신흥경제국의 부상이 유가 상승의 주된 동력이긴 하지만 값싼 석유를 얻기 위해 벌인 이라크 침공으로 오히려 원유 공급량이 감소한 것도 고유가를 부채질했기 때문이다.

자연재해에 따른 흉작은 기후변화와 관련된다. 따라서 온실가스 감축에 앞장서야 할 정부와 정치인들은 식량위기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잘못된 정책은 바이오연료 장려 정책이다. 사람들은 바이오연료용 작물 생산에 보조금을 주면서 이것이 에너지 독립을 장려하고 지구온난화를 막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는 지난달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적했듯 ‘사기’에 불과하다.

농지가 바이오연료용 작물 생산에 사용되면서 식량 생산에 필요한 땅이 줄었다. 삼림을 황폐화시켜 지구온난화를 재촉했다. 결국 바이오연료용 작물 생산에 보조금을 주는 것은 식량위기의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 정치인들이 자국 농민들의 표를 얻어내는 동안 아프리카 주민들은 굶어 죽고 있는 것이다.

곡물시장의 주요 행위 당사자들이 식량 가격 급등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도 문제다. 과거에는 흉작 등으로 인한 곡물 부족 사태에 대비해 충분한 재고 물량을 확보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재고 물량은 계속 줄고 있다.

이는 세계 식량시장이 많은 국가가 동시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대형 위기 상황에 취약하게끔 만들었다. 얽히고설킨 세계 금융시장이 충격에 약해진 것과 비슷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시급한 것은 긴급한 인도적 차원의 식량 원조를 늘리는 일이다. 끔찍한 실수로 판명된 바이오연료 정책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상황이 얼마나 달라질지는 분명치 않다. ‘값싼 식량’은 이제 ‘값싼 석유’처럼 흘러간 옛이야기가 될지 모른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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