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지게 맵시를 뽐내고 있는 화사한 꽃으로 걸음을 옮겨보자. 꽃은 무엇이며 왜, 어째서 저렇게 철따라 피어나는 것일까. 우리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울긋불긋, 형형색색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은 정녕 아니다. 봉접(蜂蝶)을 불러들여 꽃가루받이하여 씨를 맺자고 저러고 있다. 꽃을 아주 좋아했으며, 학명(學名) 쓰기를 창안해 낸 유명한 식물분류학자 스웨덴의 칼 폰 린네는 ‘가운데 자리에 한 여자(암술)가 드러누워 있고 둘레에 여러 남자(수술)가 둘러있어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꽃이라고 갈파하였다. 맞는 말이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다. 동물은 생식기를 몸 아래에 달고 있는데, 식물은 몸(줄기)의 위 끝자락에, 수줍음 하나도 없이 덩그러니 매달아 놓고 벌레들을 꼬드기고 있다.
꽃의 색깔은 크게 보아 빨강, 파랑, 노랑, 흰색으로 나눌 수 있다. 붉은 봉숭아꽃을 한가득 따자. 그것을 막자사발에서 콩콩 찧어 즙을 낸다. 시험관에 이 즙을 쏟아 붓고 거기에 식초를 몇 방울 떨어뜨려 보았다. 갑자기 붉게 변한다. 또 꽃 즙에다 양잿물(수산화나트륨·NaOH) 용액을 조금 넣었더니 푸른색으로 바뀐다. 요술이 따로 없다!
꽃물은 산성에서는 붉은색으로, 알칼리성에서는 푸른색으로 바뀐다. 꽃에 과연 어떤 물질이 있기에 이런 변화무쌍한 변덕을 부리는 것일까. 리트머스종이도 산성에서 붉은색으로, 또 알칼리성에서 푸른색으로 바뀐다. 그리하여 봉숭아꽃과 리트머스 성질이 같다. 식물의 일종인 리트머스이끼의 즙을 짜서 액체 그대로 쓰면 ‘리트머스액’이고 그것을 종이에 발라 말린 것이 ‘리트머스종이’다. 봉숭아꽃 즙이나 리트머스액이나 다 화청소(花靑素·anthocyan)라는 색소가 들어 있어 그것이 마술을 부린다. 다시 말하면 세포 속에 들어 있는 안토시아닌이 산성(식물)에서는 붉은색을, 알칼리성(식물)에서는 푸른색을 발현한다. 그리하여, 진달래는 전자에, 제비꽃은 후자에 든다.
그렇다면 노란 꽃은 왜? 꽃 세포 속에 카로티노이드(carotenoid)계 색소, 즉 카로틴(carotin)과 크산토필(Xanthophyll)이 들어있다. 카로틴은 당근이나 귤에, 크산토필은 노란 은행잎에 들어 있는 황색 계통의 색소들로 노란 개나리꽃에 그것들이 듬뿍 들어 있다.
그럼 흰 백목련 꽃은? 희다는 것은 아무런 색소(色素)도 없다는 뜻이다. 흰 꽃은 화청소나 카로티노이드계의 색소를 만들지 못한다. 흰 꽃잎을 따서 두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꽉 눌러보라. 어허! 흰색조차도 없어지고 만다. 세포 사이에 들었던 공기가 빠져나가서 그렇다. 그리고 눈(雪)을 대야에 한껏 모아보면 하얗지만 거기에 물을 부으면 무색이 되니, 그 역시 눈송이 틈새에 있던 공기가 빠져나간 것이 원인이다. 흰 꽃이나 눈송이가 희게 보이는 것은 그 속에 들어 있는 공기 때문에 빛이 산란(散亂·scattering)한 탓이다.
꽃 색의 비밀은 화청소와 카로틴, 크산토필 따위의 화학물질과 세포 안 공기에 숨어 있었구나!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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