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리적으로 아시아의 일부다. 그러나 우리의 현대 문화, 가치관, 생활양식은 같은 아시아인 중동, 동남아시아 국가들보다는 미국에 더 가깝다.
사실 아시아의 정체성은 아시아 외부, 곧 서양으로부터 규정됐다. 선진적인 서양에 대비되는 후진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일본 지식인 가운데는 일본이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양에 근접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모순들은 아시아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데서 기인한다. 금융, 산업, 문화 측면에서 나타나는 역동성은 21세기 아시아를 한 가지 성격으로 묶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아시아의 다양한 민족 집단, 정치 경제체제를 하나의 공동체로 볼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아시아 신세기’ 시리즈 8권은 아시아의 이런 다채로운 모습을 인문학적으로 성찰한 이와나미(岩波)서점의 기획이다. 일본 학자 8명이 쓴 아시아 관련 논고 121편을 모았다. 이를 ‘공간’ ‘역사’ ‘정체성’ ‘행복’ ‘시장’ ‘미디어’ ‘파워’ ‘구상’이라는 8가지 주제로 나눴다.
1권 ‘공간’은 인도-파키스탄 분쟁이나 아프가니스탄전쟁 등 파괴와 살상이 일상화된 지역과 첨단 도시로 떠오르는 중국 베이징 등 이질적인 지역들이 아시아에 공존하고 있는 현상을 분석했다. 이 지역들을 아시아라는 끈으로 이어주는 요소는 무엇인지 고찰했다.
2권 ‘역사’는 침략과 식민지시대를 거쳐 갈등, 반목으로 얼룩진 아시아의 근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다.
3권 ‘정체성’은 재일 조선인, 미국인 병사와 오키나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인 아메라지언, 디아스포라인 유대인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디아스포라 팔레스타인 사람들 등 국경을 넘은 아시아인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4권 ‘행복’은 대중문화로까지 성찰의 범위를 넓힌다. 아시아인에게 아이돌 스타는 어떤 의미인지, 스포츠에 대한 열광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등을 분석했다.
이처럼 이 시리즈는 다양한 학문을 넘나든다. 정치학, 사회학, 인류학뿐 아니라 대중문화 연구까지 폭넓은 영역의 전문가들이 집필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직된 학문 틀로는 아시아의 복잡한 면모를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아시아는 ‘대상’으로만 여겨진다. 경제 진출의 대상, 한류의 대상…. 우리 문화나 산업이 아시아의 다른 국가에 진출하는 것에는 관심이 높아도 다른 아시아 국가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는 인색하다.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신부가 도시, 농촌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이들의 문화에 여전히 배타적이다.
이 책은 이른바 아시아의 선진국들이 패권적인 의식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공존자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곱씹게 해준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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