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이름도 행방도 모르는 중학교 시절의 한 친구가 적은 시의 첫 구절이다. 그걸 반세기가 훨씬 넘은 지금껏 기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요즘도 집 앞의 개울물에 벚꽃 잎이 흘러가는 걸 보며 혼자서 그를 읊조려 본다.
출렁이네 냇물 봄은 흘러라∼.
그건 우리말의 역동성과 다양성,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듬뿍 내게 안겨 준 시 구절이요, 그래서 내겐 더할 나위 없는 명시로 간직되고 있다. 그 다음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기억에 없고 어쩌면 나는 애초부터 이 첫 줄에 배가 불러 더 이상은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출렁이네 냇물 봄은 흘러라’는 이미 자기완결적인 시였다. 내게 만약 음악의 재주가 있다면 이 한 줄의 주제만으로 영롱한 현악 5중주곡을, 또는 대편성의 환상교향곡을 작곡할 수도 있으련만….
그건 광복 후 겨우 4, 5년이 지날 때였다. 우리는 초등학교의 6년 동안은 거의 일본어만을 배우고 일본어의 아름다움만을 배웠다. 학교에서 쓰는 맑고 밝고 또렷또렷한 일본어에 비하면 집에서 쓰는 ‘조선어’는 왠지 지저분하고 구질구질하고 정리가 덜 된 말만 같았다. 도대체 조선어는 내 이름부터도 ‘오’도 아니고 ‘에’도 아닌 ‘외’, 또는 ‘아’도 아니고 ‘오’도 아닌 ‘어’란 소리를 내야 되니 일본어에 없는 ‘외’나 ‘어’로 된 내 이름부터 일본인 선생은 부를 수가 없다.
우리말 정감 넘치는 시구에 흠뻑
조선어에는 일본인이 따라 들어올 수 없는 음침하고 음험한 구석 같은 것이 있구나 하는 걸 나는 어린 나이에도 막연히 느꼈다. ‘된장’ ‘청국장’처럼 그 맛과 냄새뿐 아니라 그 발음도 일본인은 죽었다 깨어나도 따라올 수 없는 음침하고 음험한 구석 같은 것이….
그러나 그것을 우리의 자랑 아닌 콤플렉스로 느끼게 한 것이 일제의 식민지 교육이었다. 그러한 ‘모국어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것은 광복 후에도 상당한 세월이 흐른 뒤였다. 가사는 우리말 가사지만 가락은 일본 투의 노래들이 판쳤던 ‘해방 공간’에서 처음 김순남(金順男)의 가요에서 우리 가락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느꼈을 때쯤 나는 우리말의 아름다움도 점차 깨닫게 되었다.
출렁이네 냇물 봄은 흘러라∼.
그건 한국어요 한국어의 시다. 일본어로는 도저히 읊을 수도 따라 부를 수도 없는, 한국적 정감과 한국적 음감이 물씬 풍기는 한국의 시다. 어디 일본어뿐인가. 영어로도, 프랑스어로도, 독일어로도, 스페인어로도, 중국어로도 읊을 수 없고, 표음 표기 할 수가 없는 한국어의 시다. 우리말이 이렇게 힘차고 넘치고 빛나고 출렁거리는 말인 줄이야….
나이를 먹어가면서 전에는 시시했던 것들이 새롭게 자리매김을 얻게 되는 게 많다. 한국의 꽃, 한국의 신록, 한국의 봄, 한국의 4계절….
지구온난화의 영향인지,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가 자연에 투영된 것인지 요즈음에는 봄이 오면 여러 꽃이 동시다발적으로 피어 산과 들을 물들이는 걸 본다. 서울의 남산은 그러한 한국적 봄의 거대한 오브제. 그러나 물감을 섞는 화가의 팔레트처럼 다채로운 남산의 봄 빛깔도 하루하루 다르고 하루하루 흘러간다. 출렁이는 남산의 봄, 남산의 신록도 시간 속으로 흘러가는 것인가.
봄을 다시 맞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변화하는 계절 속에, 4계절 속에 산다는 축복이다. 나는 그 고마움을 상하의 섬 하와이에서 깨달았다.
봄을 다시 맞는다는 것은 축복
시간뿐 아니라 공간도 다시 만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여기저기 많이도 떠돌아다닌 젊은 시절 나는 “어느 도시든 두 번째 방문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말을 해보았다. 도시의 재회(再會)가 주는 그런 감동은 이따금 엉뚱한 생각을 해보게 한다. 만일 인생을 두 번째 방문해서 처음부터 다시 산다면 하는….
물론 인생은 다시 살 수 없다. 그럴수록 봄을 다시 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가을도 겨울도 없는 상하의 섬에 사는 것과 견주어 보라. 그러고 보면 대통령을 새로 뽑고 국회를 물갈이하는 세상에 산다는 것도 축복이다. 평생토록 태양처럼 영원한 위대한 지도자만을 떠받들고 사는 곳과 견줘 보라.
오늘만은 정치 얘기를 하지 않고 지나가자 해보았으나 역시 잘 안 된다.
출렁이네 세상 삶은 흘러라, 역사는 흘러라.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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