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 살아 돌아온 게 아니다. ‘박근혜 바람’에 위세가 당당하던 MB 측근들마저 줄줄이 낙마했다. 경남 사천에서 한나라당 이방호 사무총장을 꺾은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내키지는 않더라도 박근혜 씨에게 감사해야 할 게다.
‘계파 보스’와 총선 民意
박근혜 의원은 당 안팎으로 60명 가까운 자파(自派) 의원을 거느린 ‘계파 보스’다. 이명박 대통령은 “친박은 있을지 몰라도 친이(親李)는 없다”고 했다. 이는 물론 총선 이후 당의 화합에 방점(傍點)을 둔 말이겠지만 어쩌면 말이 씨가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19대 총선이 있는 2012년 4월 이전에. 하기야 정치란 부단히 움직이는 생물이어서 4년 후를 예상하는 것은 성급하다. 그 사이 ‘박근혜의 대항마(對抗馬)’가 우뚝 솟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나 영남권에 단단한 지지기반을 둔 ‘박근혜의 득표력’은 그 자체가 넘보기 힘든 경쟁력이 아닌가.
박근혜 씨는 행복할까? 별로일지도 모르겠다. 총선 직후 ‘봄꽃처럼 화사한 웃음’을 짓던 그가 요즘은 말문을 닫았다고 한다. 친박 탈당파의 한나라당 복당(復黨)이 헝클어졌기 때문인 듯싶다. 그의 입장은 명백하다. “한나라당이 공천을 잘못해 어쩔 수 없이 탈당을 한 것인데 유권자들이 심판을 통해 당선시킨 만큼 복당은 당연하지 않으냐. 그러니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식의 선별 복당은 총선 민의(民意)를 거스르는 일이다.”
문제는 총선 민의에 대한 해석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모두들 당선되면 한나라당으로 되돌아가겠다고 했다지만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아닌 친박연대 및 무소속 후보를 선택한 민의가 반드시 ‘계파 보스’의 생각과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바깥에서 협조하며 견제하라는 뜻일 수 있다. ‘153석의 아슬아슬한 과반’을 국민의 절묘한 선택이라고 보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가능하다. 따라서 “국민은 153석으로 우리보고 정치를 하라고 명령한 것”이라며 복당 불가(不可)를 천명한 강재섭 대표의 발언이 일단은 당당하게 들린다.
친박연대 및 무소속 후보에게 패배한 한나라당 후보들은 복당 얘기만으로도 심사가 뒤틀릴 것이 뻔하다. 패배의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공천 탈락자들이 ‘박근혜 깃발’을 들고 입성한다면 그들로서는 두 번 죽는 셈이 아니겠는가. 한나라당 일각에서 무조건 즉시 일괄복당을 주장하는 박 전 대표에게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무엇이 진정한 민의이고 원칙이고 배려인가. 정치인 박근혜는 이 점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 그가 지도자급 정치인으로 떠오른 것은 역설적이게도 패배에 대한 깨끗한 승복 이후다. 단아한 원칙주의자의 모습이 그에게 카리스마를 부여했다. ‘계파 보스’로서의 이미지가 강해질수록 카리스마는 약화될 수 있다. “한나라당의 국정 동반자는 친박연대가 아닌 야당인 통합민주당이다”(남경필 의원)라는 지적에는 분명 ‘커튼 뒤의 정실(情實) 공천’에 눈감은 측면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크고 넓게 볼 때 틀린 말은 아니다.
발목 잡은 ‘양정례 파문’
이 대통령은 꼭 집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당내 다툼을 “현실의 잡다한 문제” “국내의 사소한 문제”로 치부했다. 남들이 다 눈치 채는 숨은 뜻을 박근혜 씨만 모를 리는 없을 터. 하물며 친박연대 비례대표 1번 ‘양정례 파문’으로 복당 논란은 명분과 원칙을 따지기 전에 온통 엉망이 돼버렸다. 어떡하든 이 문제를 풀어내야 7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하는 수순도 밟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당권 투쟁, 계파 투쟁의 이미지만 쌓일 뿐이다. 이래저래 고민이겠지만 털 것은 털어버리고 길게 호흡해야 한다.
박근혜 씨는 행복할까? 두고 볼 일이다. 그가 ‘계파 보스’ ‘영남 대주주(大株主)’의 틀에서 벗어나 폭넓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치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을지.
전진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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