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은 얼마 전 언론인들과 만나 “공직자들부터 변화해야 한다. 청와대가 변화를 주도하고 1년 안에 전체 공직사회로 파급되도록 할 것이다”고 말했다. 오전 7시 반에 정부 부처 업무보고를 받은 것도 공직사회 변화를 이끌기 위한 것이었다고 이 대통령은 덧붙였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새벽 출근에 따른 부수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과거 정권 때 청와대에 입성한 대통령 측근들이 청탁과 함께 돈을 받았다가 물의를 빚곤 했는데 새벽 출근에 야근이 겹치다 보면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는 24일 여야 지도부 청와대 회동에서 “요즘 대통령이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공무원들이 불만이 많다고 한다. 광화문 일대 식당은 (공무원들이 안 와서) 저녁에 장사가 안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이런 변화는 각 부처로 퍼지고 있다. 외교통상부를 비롯해 많은 부서가 오전 8시에 간부회의를 열고 있다. 공무원들의 출근 시간도 덩달아 빨라지고 있다. 변화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을 보좌해야 할 여권 핵심인사들이 파워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득 국회부의장 공천에 반발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번에는 청와대 정무라인 교체를 주장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청와대의 정무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에 인선 잡음과 4·9총선 공천 파문 등이 이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류우익 대통령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비서진은 한나라당의 요구에 반발하고 있다. 이 와중에 청와대 비서진도 두세 그룹으로 나뉘어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런 갈등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동의, 규제개혁 등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상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람 챙기기 욕심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 핵심 인사가 부처 인사에 개입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고 외교통상부에서는 “고위 인사가 상왕 노릇을 하려 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여당과 대통령 측근들 간의 권력 다툼은 과거 정권에서도 흔히 있던 일이다. 김영삼 정부 때는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 김대중 정부 때는 동교동계, 노무현 정부 때는 386 측근그룹과 여당 의원들 간에 갈등이 빈발했다.
예전에도 있었다고 해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권력 다툼을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여권 핵심부 내부의 갈등과 마찰은 결국 국정 혼란과 대통령의 실패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전임자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주변의 권력 다툼을 잘 다스려야 한다. 당-정-청 고위 인사들도 개인적 욕심을 자제하고 나라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대통령 주변에서 밥그릇 챙기기 추태가 이어진다면 새벽 별을 보고 출근하는 공무원들이 신명나게 일을 하겠는가. 정권을 맡긴 국민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파워게임이 아니라 되살아나는 경제다.
김차수 정치부장 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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