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창혁]인명진(印名鎭)

  • 입력 2008년 4월 26일 02시 58분


‘정의의 여신(女神)’을 보면 오른손엔 칼을, 왼손엔 저울을 들고 있다. 그만큼 엄정해야 함을 상징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눈을 가리고 있다. 정의는 마치 이름을 가리고 답안지를 채점하는 것처럼 공평무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2006년 10월 한나라당이 인명진 목사를 당 윤리위원장으로 위촉하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정의의 여신’ 얘기를 꺼내자 강재섭 대표는 “인 목사는 한마디로 정의의 화신(化身)이다”고 칭송했다.

▷1986년부터 서울 구로구 구로동 갈릴리 교회를 이끌고 있는 인 목사는 평생 노동운동과 빈민운동을 해왔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앞장선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대변인 출신이기도 하다. 민주화 이후 정치에 직간접으로 참여한 목사들 대부분이 친DJ(김대중) 성향이었지만, 인 목사는 드물게 친YS(김영삼)로 알려졌다.

▷인 목사는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자리를 몇 번 사양한 끝에 “예수 믿는 사람은 죄인들 사이로 가야 한다”며 받아들였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국민에게 희망을 준 적이 없는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물의를 빚거나 잡음을 일으킨 의원들에게 사회봉사명령을 내리는 등 한나라당을 정화(淨化)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지난달 공천 때는 공천심사위가 정치 철새들을 공천하자 “사람을 공천해야지, 새를 공천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제동 걸기에 안간힘을 썼다. 그는 신동아 5월호 인터뷰에서 “당 소속 공천심사위원인 이방호, 강창희, 정종복 의원 등을 윤리위원회에 넘겨 징계할 생각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인 목사는 “지도부가 단 한 번도 내 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더라. 망나니처럼 멋모르고 앞에서 칼춤만 춘 격”이라고 허탈해했다. 그는 “투표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 건, 살면서 이번 총선이 처음”이라고도 했다. 그가 어제는 부동산 투기 의혹이 일고 있는 일부 대통령 수석비서관들을 향해 “땅은 농사짓는 사람이 가져야 한다”며 사실상 사퇴를 요구했다. 인 목사가 신여권(新與圈)의 ‘구색’에 불과하다면 보수의 자정(自淨)은 멀기만 할 것 같다. 그렇더라도 그가 계속 소금 역할을 해준다면 국민이 옥석(玉石)을 가리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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