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세상/박상진]썩은 나무토막에 가득 찬 역사

  • 입력 2008년 4월 28일 02시 59분


최근 우리는 여러 개발사업의 영향으로 매장 문화재의 발굴 소식을 수시로 접한다. 발굴이 끝나면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는 것으로 발굴 터는 영영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 아쉬움이 남는다. 산 사람의 생활 터전 마련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발굴 유물의 고고학적인 의미를 조사하고 보존하는 과정에 한 가지 짚어볼 부분이 있다. 유물의 과학적 분석의 필요성이다. 유물의 재료는 무기물인 흙, 돌, 철과 유기물인 나무가 대부분이다. 특히 나무의 경우, 가공 상태인 인공 유물이나 자연 그대로의 유물을 막론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기본적인 재질 분석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발굴 터에서 나오는 목질 유물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생명체이므로 당시 주변의 자연환경이 몸속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여기에는 나무의 세포형태를 연구하는 목재조직학(wood anatomy)이란 학문의 지식을 동원해 여러 정보를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다. 오래된 나무 유물은 주변 환경에 따라 썩음의 정도는 달라도 나무 세포의 기본 모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다.

우선 현미경으로 나무의 종류를 찾아낼 수 있다. 무슨 나무인지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무는 저마다 좋아하는 환경이 서로 달라 어느 한정된 지역에만 자라는 특성을 갖는다. 이 때문에 무슨 나무로 만든 것인지를 알아내는 일은 당시 사람들의 지역 혹은 국가 사이의 교역 범위를 짐작하게 하는 바로미터다.

지금까지 알려진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1971년 7월 5일, 충남 공주시 송산리 고분군에서는 백제 25대 무령왕(재위 기간 501∼523)의 왕릉 발굴이 있었다. 방대한 유물 중에 11조각의 관재(棺材)도 포함돼 있었지만 이 으스스한 널빤지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꼭 20년째인 1991년, 필자는 관재가 ‘금송(金松)’이란 나무로 만들어졌음을 밝힐 수 있었다. 금송은 일본인들이 자기네 나라에만 자라고 재질이 좋으며 모양마저 아름답다고 자랑해 마지않는 ‘일본의 나무’다. 무령왕릉 관재가 금송이라는 사실은 당시의 한일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실증적 자료다.

또 충남 부여군의 왕궁 터인 관북리 유적이나 전북 익산시의 미륵사지에서 금송을 비롯해 일본 특산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출토됐다. 이렇게 백제의 나무를 분석해 보면 일본 특산 나무가 광범위하게 포함돼 있다. 한마디로 백제와 일본이 얼마나 긴밀한 관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증거다. 그 외에 신라 금관총과 최근에 발굴된 경남 창녕군 가야고분의 관재 일부도 일본에서 가져왔을 가능성이 높은 녹나무였다. 한편 낙랑고분의 관재 일부는 중국 남부 특산인 넓은잎삼나무로, 낙랑과 중국 대륙과의 관계를 증명한다.

비교적 큰 유물이라면 나이테를 만나게 된다. 여기에는 수만 년 전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는 여러 정보가 들어 있다. 예를 들어 혜성이 지구와 충돌해 엄청난 기후 변화가 오면 그해의 광합성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는 나무의 나이테에 고스란히 남는다. 나이테 지름이 좁고 넓게 너울처럼 파동 치는 것은 당시의 환경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연륜연대학(annual ring chronology)이란 학문의 영역에서 이를 분석해 옛 기후를 알아내고 유물의 연대를 추정하기도 한다. 나이테는 자연계의 수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있는 테라급 대용량 하드디스크이나 우리가 해독하는 부분은 극히 일부다.

이처럼 유물 발굴 터에서 나오는 썩은 나무 한 토막은 지구의 역사에서 선조들의 생활상까지 짐작해 볼 수 있는 정보의 바다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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