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대표작 ‘토지’를 탈고하고 자연 속의 삶을 실천했던 집필실은 세월이 흐를수록 역사적 가치가 커져갈 것이다. 그러나 자택 일대가 택지로 개발되면서 박 씨는 원주 시내의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의 집필실은 그대로 남을 수 있었으나 주변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문학적 정취는 작가가 살았던 건물 하나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소설을 잉태한 공간 전체에서 나온다. 작가가 거닐었던 길, 살았던 동네가 문학의 산실이다. 어제 그가 타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점이 다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가 벌여온 환경운동은 그의 소설 ‘토지’와 일맥상통한다. 그는 평소 ‘모든 생명은 살아가기 위해 살아있는 걸 죽여야 한다. 그러므로 생명 자체는 한(恨)’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한에서 비롯되는 자신에 대한 연민은 모든 생명에 대한 연민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토지’에는 생명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담겨 있다. 생각이 글 속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표출된 게 그의 환경운동이었다.
▷‘토지’는 200자 원고지 3만1000장이 넘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조선조 말부터 1945년 광복의 순간까지 한국 사회의 긴 여정이 담겨 있다. 1955년 첫 단편 ‘계산’으로 시작된 그의 창작열은 마지막까지 식지 않았다. 그가 올 3월 발표한 시 ‘옛날의 그 집’은 원주 단구동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모진 세월 가고/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한 인터뷰에서 “행복했으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며 파란의 인생을 내비쳤던 그는 떠날 때만큼은 편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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