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금동근]쇠잔한 한국학 구걸로라도 살리겠다는 심정

  • 입력 2008년 5월 7일 02시 54분


“쇠잔해가는 명가(名家)같다는 느낌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14대 원장으로 7일 공식 취임하는 김정배 원장이 6일 기자 간담회에서 맨 먼저 한 말이다.

한중연이 1978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정문연)으로 출발한 뒤 한동안 한국의 인문 사회 과학 연구를 주도하는 기관으로 주목받았지만 지금은 그 출범 취지와 명성이 퇴색했다는 뜻이다.

그는 한국학에 대한 지원이 다른 학문 분야에 비해 크게 빈약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중 한국학에 대한 지원은 1%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한국학 지원 규모는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 7개국(G7)이 자국 학문을 지원하는 것의 5∼10%에 그친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원장은 국내에서 한국학을 대접하는 게 이렇다 보니 해외에서의 한국학 연구에 대한 지원은 더 열악할 수밖에 없다면서 “가만히 있으면 외국 교과서에 일본이나 중국의 시각만 반영된 동북아시아 역사책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 원장의 지적대로 2005년 말 현재 일본 정부의 해외 일본학 연구 지원 규모는 우리 정부의 해외 한국학 지원 규모의 100배에 이른다.

일본학이 개설된 해외 대학은 103개국 2341곳이고, 한국학을 개설한 대학은 62개국 735곳이다. 중국학은 수요가 많아 세계 주요 대학이 대부분 개설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영국 더럼대, 독일 훔볼트대 등이 한국학 강좌를 폐지한 것을 비롯해 유럽 대학들이 예산을 절감하려 할 때면 한국학은 ‘구조조정 1순위’로 거론된다.

국내외 한국학 지원에 대해 학계는 섣불리 큰 기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경제나 실용을 앞세우면서 성과가 두드러지지 않거나 ‘돈이 되지 않는’ 한국학을 홀대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김 원장은 이에 대해 “경제 발전과 학술, 문화는 수레의 양 바퀴인데 경제만 잘나가면 사회가 ‘기형적 괴물’이 된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를 일으키면서 정문연을 설립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간담회가 끝날 즈음 그는 “직접 나서 구걸이라도 하고 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학 연구의 핵심 기관을 책임지는 수장이 공식석상에서 ‘구걸’이라는 말까지 해야 하는 게 오늘날 한국학 연구의 현실이다.

금동근 문화부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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