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하지 않은 전자의 반면교사로 노무현 대통령 시절을 상기해 보자. 노 대통령은 진정성을 강조하며 진보 의제를 추구했지만 야당, 언론, 보수단체, 일반시민의 비난은 가혹했다. 이상주의적 도덕관을 지닌 그로서는 억울하고 울분을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세력을 적대시하고 자기 뜻에 맞는 사람들만 연대 대상으로 삼았다. 편 가르기, 맞짱, 코드, 언론 탓 등 피아(彼我) 구분, 선악 구분이 확연한 단어와 표현이 노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을 특색 지었다. 노 대통령은 ‘무지’하거나 ‘사악’한 남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것이다. 결국 돌아온 것은 지지도의 추락, 국정 난맥, 잇단 선거 패배, 정권 재창출 실패였다.
반대여론 적대하면 국정 실패
오늘날 이명박 대통령도 사면초가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반대 정당들은 물론이고 진보단체, TV 등 언론, 누리꾼들이 정책 사안마다 극심한 공세를 퍼붓고 있다. 보수는 갈라져 자중지란(自中之亂)을 벌이고 있다. 대통령에 취임한 지 겨우 두 달이 지난 지금 지지도는 반 토막으로 잘렸다. 경기 침체와 물가 불안이 동시에 진행되는 가운데 대운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추가경정예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 대통령의 정책 의제에 힘을 실어줄 만한 지원군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대통령도 자칫 이전 정부의 전철을 밟아 비판세력에 전면전을 선포하고, 적과 동지를 이분법적으로 구분·차별하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독불장군처럼 전투 모드로 전환해 이른바 맞짱을 떠봐야 역효과만 난다는 것은 이전 정부의 실패가 아주 잘 예시해 준다. 이념적 맹신에 따라 움직이는 시민단체가 물러설 리 없고, 센세이셔널리즘을 기본 속성으로 하는 언론이 바뀔 리 없다. 정파적 계산을 앞세우는 정당들이 따라올 리는 더더욱 없다. 누리꾼을 포함한 일반국민도 공권력에 대한 비판을 통해 심리적 쾌감이나 시민적 자부심을 느끼는 경향이 있으므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홍보에 신경을 써도 쉽게 설득되지 않는다. 사안이 터지고 공세가 이어질 때마다 대통령이 억울하다고 항변하고 역공세를 취하면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는커녕 대통령답지 않다는 인상만 심어주고 불신을 심화시킨다.
‘대통령답다’는 표현 속에는 각종 비난에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고 의연하게 원칙을 지키며 상대방과 대화를 시도하는 열린 지도자의 모습이 함축되어 있다. 이 모습을 실현하려면 뜨거운 도덕주의보다 냉철한 현실주의 사고가 필요하다. 도덕주의 사고는 ‘내가 절대로 옳다’는 경직된 자세를 가져오고 나를 반대하는 남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게 만든다. 나와 남 사이에는 건너기 힘든 벽이 세워진다.
이와는 달리, 현실주의 사고는 모든 입장(설혹 근거가 없어도)을 주어진 현실로 받아들이므로, 나를 겨냥한 비판(설혹 터무니없어도)에 그리 분노하지 않게 해주고 반대자들(설혹 광적이어도)을 파트너로 간주하며 대화를 계속할 수 있게 해준다.
비판 수용하고 대화 나서야
이 대통령이 표방하는 ‘실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념이나 개인적 아집에 사로잡히지 않고 어떠한 반대와 비판도 현실로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 그리고 그 자세로 상대방과 대화하고 설득하는 노력이야말로 실용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열린 파트너십은 당장 성과를 내지 못해도 대통령답다는 인식을 서서히 퍼뜨리며 결국 국민의 지지를 회복시켜줄 것이다. 이처럼 새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피하는 길은 지난(至難)하고 인내를 요한다.
임성호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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