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어루만지는 책 30선]<17>사랑의 기술

  • 입력 2008년 5월 23일 02시 55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립감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하면서도 각자의 특성을 허용하고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때문에 사랑에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는 역설이 성립한다.”》

몇 년을 두고 읽다 보면 미처 몰랐던 의미를 발견하는 책이 있다. ‘사랑의 기술’이 대표적이다. 성공이나 행복의 ‘기술서’들이 넘쳐나는 서점 진열대에서 이 책을 집어들 수 있는 이들은, 진실한 지혜가 주는 풍성한 깨달음에 성큼 다가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일단 왜 사랑의 기술을 배워야 하는지 설명한다. ‘왜 사랑의 열정은 지속되지 않는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무얼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저자는 “유혹의 기술이 아닌 사랑의 기술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사랑의 기술’은 프랑크푸르트학파나 인간주의적 윤리학 등 저자를 표현하는 거창한 사상적 외투 때문에 사랑학 개론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미켈란젤로처럼 초대형 그림을 그리는 대(大)화가가 잠깐 짬을 내 젊은이들을 만나고 그들을 위해 거리에 그린 작은 벽화와 같다. 경쾌하고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사랑은 각자의 고유한 경험에 속하는 일이다. 지극히 사적이며 비이성적인 감정이 지배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사랑의 조언은 대부분 실패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실제 환자를 상대로 한 정신분석을 바탕으로 사랑을 재조명한다. 사랑은 단순히 두 사람의 감정 문제만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저자가 보기에 사랑은 ‘분리된 존재’라는 실존적 인간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자연의 질서에서 분리돼 있다. 때문에 이 분리된 존재를 자각하는 데서 오는 고립감과 불안을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의 합일을 이루려는 열망을 품는다. 이는 ‘타인과의 융합 욕구’로 이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사랑의 동기’다.

하지만 아쉽게도 연인들이 꿈꾸는 ‘완벽한 합체’란 있을 수 없다. 다시 기존 전제로 돌아가 인간은 모두 분리된 존재인 탓이다. 때문에 각자의 개별성을 유지하면서 합일을 이루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사랑의 형태이다.

이러한 사랑의 성취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아도취’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자기 욕구 측면에서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또는 상대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타인에 대한 관심 책임 존중 지식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성장도 함께 능동적으로 노력하는 과정이 진짜 사랑인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처음부터 불꽃이 일고 미친 듯이 열중하는 것을 사랑의 증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저자는 그건 “기껏해야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입증하는 것일 뿐”이라고 충고한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인격의 완성’이라는 전인적인 과정이다. ‘사랑의 기술’은 그 성숙한 사랑을 이루도록 돕는 마음의 나침반이 되어준다.

정재열 서울시립 은평병원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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