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을 두고 읽다 보면 미처 몰랐던 의미를 발견하는 책이 있다. ‘사랑의 기술’이 대표적이다. 성공이나 행복의 ‘기술서’들이 넘쳐나는 서점 진열대에서 이 책을 집어들 수 있는 이들은, 진실한 지혜가 주는 풍성한 깨달음에 성큼 다가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일단 왜 사랑의 기술을 배워야 하는지 설명한다. ‘왜 사랑의 열정은 지속되지 않는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무얼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저자는 “유혹의 기술이 아닌 사랑의 기술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사랑의 기술’은 프랑크푸르트학파나 인간주의적 윤리학 등 저자를 표현하는 거창한 사상적 외투 때문에 사랑학 개론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미켈란젤로처럼 초대형 그림을 그리는 대(大)화가가 잠깐 짬을 내 젊은이들을 만나고 그들을 위해 거리에 그린 작은 벽화와 같다. 경쾌하고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사랑은 각자의 고유한 경험에 속하는 일이다. 지극히 사적이며 비이성적인 감정이 지배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사랑의 조언은 대부분 실패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실제 환자를 상대로 한 정신분석을 바탕으로 사랑을 재조명한다. 사랑은 단순히 두 사람의 감정 문제만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저자가 보기에 사랑은 ‘분리된 존재’라는 실존적 인간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자연의 질서에서 분리돼 있다. 때문에 이 분리된 존재를 자각하는 데서 오는 고립감과 불안을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의 합일을 이루려는 열망을 품는다. 이는 ‘타인과의 융합 욕구’로 이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사랑의 동기’다.
하지만 아쉽게도 연인들이 꿈꾸는 ‘완벽한 합체’란 있을 수 없다. 다시 기존 전제로 돌아가 인간은 모두 분리된 존재인 탓이다. 때문에 각자의 개별성을 유지하면서 합일을 이루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사랑의 형태이다.
정재열 서울시립 은평병원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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