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문명]무소유(無所有)

  • 입력 2008년 5월 29일 03시 00분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1900∼1980)은 인간을 존재지향과 소유지향으로 나누었다. 존재지향은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꼭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유지향은 꽃이 아름다운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거냐, 네 거냐가 중요하다. 프롬은 현대인들이 점점 소유지향으로 바뀌어왔다고 본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그가 누구냐?’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로 판가름된다는 것이다. 프롬은 “소유와 욕망에는 한계가 없어서 소유지향적 삶은 행복하기 힘들다”고 했다.

▷무소유(無所有)의 행복은 때로는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기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요즘엔 가진 사람들이 새롭게 선택하는 라이프스타일로 바뀌었다. 17일자 뉴욕타임스는 집, 차, 가구를 팔거나 남에게 주고 승진과 해고가 없는 자연으로 들어가 전기도 없는 곳에서 나무를 때며 ‘자발적 간소함(voluntary simplicity)’을 택하는 미국 내 ‘무소유 가정’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19일자 월 스트리트 저널 블로그도 50여 개 투자자문회사를 관리하는 40대 억만장자가 “부자가 되고 보니 소유에 더는 흥미를 잃게 됐다”며 고급맨션과 차를 팔고 호텔에서 ‘홈 리스(homeless)’로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할 계획이라고 한다. 프롬식 표현을 빌리면 ‘선(先)소유 후(後)존재’를 지향하는 신인류다. 이들에게는 기부행위도 사회적 부채의식이 없어 쿨(cool)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가진 게 없어서 무소유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보통 사람들에겐 “다 가져 보았으니 이제 버리겠다”는 말은 좀처럼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물욕을 억제하라”며 무소유를 권하는 종교인들 말에 솔깃하다가도 ‘그들 뒤에는 의식주(衣食住)를 해결해 주는 교단(敎團)이 버티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면 공연히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과 같다. 물욕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어느 사회든 버리는 사람들보다 갖기를 욕망하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왔다. 버리는 것도 자유고, 갖는 것도 자유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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