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의 위기, 신뢰의 위기
대통령에게 시간을 주자. 그는 “저부터 바뀌겠다”고 했다. “모든 게 제 탓이다”라고 했다. 성마른 이들은 ‘바뀌긴 뭘 바뀌나, 입에 발린 소리일 뿐’, 그렇게 냉소하겠지만 그런 악의(惡意)로는 사회공동체가 직면한 신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지난 몇 달 동안 대통령과 이 정부가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 또한 선의(善意)가 낳은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 효과’ 라고 보아주자. 그리고 교정할 시간을 주자. 그러자면 참고 기다려주는 인내가 필요하다. 대통령 탄핵과 하야(下野)를 외치고 반(反)정부 시위로 치달아서는 헌정체제에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음을 냉정하게 헤아려야 한다.
한미 쇠고기 협상, 이 정부가 잘못했다. 두말할 것 없이 졸속협상, 부실협상이다. 한미 정상회담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치우친 나머지 국민건강권과 검역주권에 소홀했다. 소홀했다기보다 너무 쉽게 봤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추정한다면, 미국 쇠고기의 안전관리 기준이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기준을 충족한 만큼 지난 정부 때부터 걸려 있는 수입 재개(再開) 문제를 계속 끌 필요가 있겠느냐. 그래봤자 두 나라의 ‘전략적 동맹’에 마이너스가 될 테고, 한미 FTA에도 걸림돌이 되지 않겠느냐. 더구나 광우병 위험은 확률이 지극히 낮은 것이고, 최악의 경우 안 사먹으면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쇠고기 문제는 미국 측 요구대로 받아주자. 그게 국익(國益)에 플러스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가벼운 판단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괴담(怪談)의 영향이 있었다고는 하더라도 광우병에 대한 불안감은 확률의 문제가 아니며, 한미관계에 대한 한국인의 이중적 정서를 통상(通商)의 잣대로만 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단지 친미(親美) 반미(反美)의 차원이 아니다. 고마워하면서도 고까워하는 한국인의 부채감과 자존심이 복합된 산물이다. 이렇듯 폭발력이 강한 소재에 ‘싫으면 안 먹으면 될 것 아닌가’ 식의 단견(短見)으로 접근한 것이 이 정부의 실용주의라면 그 철학적 빈곤이 놀라울 수밖에 없다.
당장의 쇠고기 파동보다 심각한 문제는 대통령과 이 정부가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소통의 문제라고 하지만 신뢰의 위기라고 봐야 옳다.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이명박 정부는 성공할 수 없다. 대통령이 된 후로는 ‘이명박’에게 운도 따르지 않고 있다. 기름 값에 곡물 값 등 해외 원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판에 대통령이 아무리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한다 한들 경제가 살아나기 쉽지 않다. 성장, 성장 하다가 오히려 물가는 급등하고 경기는 추락하는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걱정이다.
어려운 건 어렵다고 하고 국민에게 참고 견뎌내자고 해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말로 바뀌겠다고 해서 잃은 신뢰가 돌아오는 건 아니다. 말은 줄이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부자 내각의 일도 잘하지 못하는 장관들’을 교체해야 한다. 사람 찾기 어렵단 얘기는 그만하라. 아는 사람, 인연 있는 사람들에서만 찾으니 없지, 이념의 좁은 틀에서 벗어나 진짜 실용의 눈으로 찾는다면 왜 ‘덜 부자면서도 일 잘하는 인물’을 찾지 못하겠는가. 청와대의 책상물림들도 계속 훈련시킬 요량이 아니라면 적임자를 찾아야 한다.
실용의 원칙, 상식에서 찾아야
이랬다저랬다 하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 대운하가 4대 강 정비사업으로 바뀌고, 한편에선 대운하 건설을 위한 꼼수라는 ‘양심선언’이 터져 나온다. 이래서야 국민이 대통령과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대운하는 차제에 확실하게 접는 게 낫다.
실용 이전에 상식의 정치를 해야 한다. 아니, 상식을 실용의 원칙으로 삼으면 된다. 우파건 좌파건 국민의 상식에 맞지 않으면 버림받는다. 상식에 맞게 국민을 섬기면 된다.
내달 3일이 이명박 정부 100일이다.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혹독한 대가를 치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공자는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백성이 믿지 않으면 나라가 서지 못한다)이라고 했다.
전진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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