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원재]LG와 GE

  • 입력 2008년 5월 31일 02시 52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은 1878년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설립한 에디슨제너럴일렉트릭이 모체다. 전기 전자 분야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금융 발전설비 의료장비 항공기엔진 등 거의 모든 업종에 진출한 세계 최대 기업이다. 1990년대 GE의 혁신을 이끈 잭 웰치 당시 회장의 성공 사례를 보고 국내 재계에 ‘GE 따라하기’ 열풍이 분 적도 있다. LG전자의 고위 임원들은 크로톤빌 연수원을 찾아 ‘6시그마’ 같은 GE의 혁신운동을 열심히 벤치마킹했다.

▷GE가 가전사업부를 매각하기로 결정하면서 LG전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GE 가전사업부는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식기세척기 같은 백색가전이 주력제품으로 지난해 매출은 70억 달러(세계 10위)였다. 하지만 미국시장에선 20% 점유율로 월풀에 이어 2위다. 세계 가전업계 매출 3위인 LG전자(126억 달러)가 GE의 가전을 사들이면 1위인 월풀(194억 달러)을 제치고 단숨에 선두로 치고 나갈 수 있다. 미국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GE를 인수했다는 것만으로 브랜드 인지도가 올라가는 이점도 있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이 27일 “GE 매각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하자 방한 중인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은 다음 날 “(인수 후보 중) LG전자가 가장 앞서가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LG는 GE가 내민 손을 선뜻 잡지 않고 있다. 50억∼80억 달러로 추정되는 인수 대금이 부담스럽고 두 회사의 제품이 많이 겹쳐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을 수도 있어서다. 그렇다고 아예 인수를 포기하자니 경쟁업체들의 동향이 신경 쓰인다.

▷GE가 가전사업을 접기로 한 것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은 데다 미국 경기 침체로 수익이 나빠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해당 시장에서 1위나 2위가 될 싹이 보이지 않으면 과감하게 철수해 발전 가능성이 높은 핵심 분야에 집중하는 게 GE식 경영이다. LG전자도 가전에 너무 많은 돈을 썼다가는 유망 신규사업 진출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걱정한다. 철저한 손익 계산과 성장성에 대한 판단이 최대의 잣대다. 왕년에 한수 가르쳐준 GE가 손짓을 한다고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들 수 없는 것이 비즈니스의 세계다.

박원재 논설위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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