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핀란드는 강국 사이에 낀 소국이란 점과 석유 등 천연자원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두 나라는 유일한 장점인 우수한 인력과 그들의 지식, 창의성을 통해 국가를 발전시켜야 하는 운명을 걸머지고 있다.
이장무 서울대 총장과 유럽의 디자인 명문 대학인 핀란드 국립 헬싱키 예술디자인대(UADH)의 위리에 소타마 총장이 지난달 31일 서울대 총장실에서 대담을 가졌다. UADH는 지속적인 교육 시스템의 혁신으로 전 세계 대학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두 총장은 지식 혁신을 위한 학문 간 융합과 창의적 인재 육성 방법 등을 논의했다. 소타마 총장은 서울대 한국디자인산업센터가 주관하고 본보가 후원한 ‘제6회 국제디자인문화콘퍼런스’에 참여하기 위해 지난주 방한했다.
● 학문 융합으로 새 지식 창조해야
▽이장무 총장=먼저 지식 혁신을 위한 학문 간 융합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서울대 총장이 되면서 계속 학문 간 융합을 강조해 왔습니다. 제가 지난 한 달 동안 세 차례 세계 대학 총장 모임에 참석했는데,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슈가 융합이더군요.
▽위리에 소타마 총장=핀란드에서도 학문 간 융합에 큰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핀란드 정부는 최근 ‘혁신 대학’이란 프로젝트명으로 불리던 알토(Aalto)대의 설립 허가를 최종 승인했습니다. 이 대학은 헬싱키공대와 헬싱키경제대, 예술디자인대(UADH) 등 각 분야에서 최고 대학인 3개 대학을 하나로 합병하는 학교로 내년에 문을 엽니다. 이런 시도는 세계 최초입니다. 원자가 충돌하듯이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혀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정말 축하할 만한 일입니다. 학제 간 연구는 브레인스토밍처럼 다양한 분야의 사람과 지식을 모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는 미국 미시간대 및 독일 베를린공대와 함께 ‘3대륙 강의’라는 것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타마=이 총장 말씀에 동의합니다. 저는 세계가 직면한 에너지, 가난, 질병 등의 이슈를 해결하려면 단일 학문의 노력으론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에 몸담고 있던 학문 틀에서 보지 못한 다른 부문의 새로운 시각과 해결책을 접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새로운 해결책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 한국인의 창의성을 극대화하려면?
▽이=대학은 창의력과 혁신을 이끌어 내는 ‘상상력의 발전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교육자로서 상상력의 재료와 도구가 되는 경험의 중요성을 깊이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을 기업이나 외국에 보내고, 다양한 경험을 가진 외부 인사가 강의를 하게 합니다. 한국 학생들, 더 나아가 한국인들이 어떻게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소타마=북유럽 국가들은 창의성이나 혁신과 관련한 국제 순위에서 항상 상위에 오릅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소수가 아닌 모든 구성원의 총체적 창의성을 이용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를 위해 여성 인력의 사회 진출을 적극 장려합니다. 또 대학에서도 서로 다른 부문과 협력하는 방법을 많이 가르칩니다.
또 창의적 공통체가 혁신적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미국 글로벌기업의 사업 아이디어 중 다수가 미국 스탠퍼드대 주변의 선술집에서 나왔습니다. 이 대학은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는 분위기와 지원 제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창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집합적 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이 중요하다는 말씀이군요. 15세기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그를 도운 집현전의 영문 번역명(House of Collective Knowledge)이 생각납니다.
● 디자인은 개념을 시각화하는 힘 가져
▽이=소타마 총장께서는 디자인과 예술 분야에서 꽤 오래 연구를 해 오셨습니다. 디자인이 창의력을 높이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서울대는 현재 공대생들에게 디자인 과목을 배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소타마=디자인은 창의성과 관련해 세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첫째, 디자인은 여러 분야를 복합적으로 생각하는 전체론적인(holistic) 사고방식을 이용하도록 도와줍니다. 둘째, 문제를 해결하게 해 줍니다. 디자인을 이용하면 가설을 구체적인 모델로 만들어 실험해 볼 수 있습니다. 셋째, 디자인은 개념을 시각화해 커뮤니케이션을 돕습니다. 개발계획이나 미래사회의 모습과 관련한 최종 결과물을 미리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쓸데없는 반대를 없애고 기대감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장무 총장:
2006년 제24대 서울대 총장에 취임했으며, 지난해 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을 지냈다.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에서 기계역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제 간 융합교육과 교류 활성화를 집중 추진 중이다.
:위리에 소타마 총장:
1986년부터 핀란드 국립 헬싱키 예술디자인대의 총장을 맡고 있으며, 핀란드 국가디자인 정책과 대학교육 체계 재구축 등의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 왔다. 인테리어건축과 가구디자인 학과 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정리=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