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힐러리의 새 출발

  • 입력 2008년 6월 4일 03시 01분


3일 몬태나와 사우스다코타 경선을 끝으로 미국 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 선출을 위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간의 치열한 접전이 사실상 막을 내린다. 이번 경선과 상관없이 힐러리가 오바마를 꺾는 건 이미 산술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미국 언론의 관심도 오바마와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의 본선 대결로 옮아간 지 오래다.

‘흑인’(사실은 혼혈이지만)과 ‘여성’의 대결로 세계적 관심을 끈 승부에서 힐러리가 끝내 분루를 삼키게 된 데 대해선 후보의 자질과 비전, 선거 전략 등에 걸쳐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크게 보면 미국 사회가 아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수용할 태세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CNN의 4월 여론조사에선 흑인 대통령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응답이 76%, 여성 대통령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응답이 63%였다.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보다는 대통령으로 낫다’는 유권자들의 인식이 그대로 투표 결과로 이어졌다. 실제로 오바마가 승리한 주 중 메인 버몬트 아이오와 노스다코타 아이다호 와이오밍 등은 백인 인구의 비율이 90%를 넘는다.

미국에서 여성이 전국적으로 처음 참정권을 행사한 것은 1920년 11월 2일 워런 하딩 대통령을 뽑은 대선 때였다. 그 전엔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면 금주(禁酒)법을 제정할 것이라거나 사회질서가 무너질 것이라는 등의 황당한 편견이 많았다.

그로부터 88년이 흐른 지금 제110대 의회(2007∼2009년)엔 하원에 71명, 상원에 16명 등 모두 87명의 여성 의원이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을 포함한 역대 여성 상하원 의원은 245명이고, 전현직 여성 주지사도 30명이나 된다. 1984년엔 민주당 제럴딘 페라로 하원의원이 첫 여성 부통령 후보로 선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천하의 힐러리’가 주저앉는 것을 보면 여성이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되는 것을 가로막는 현실의 ‘성벽(性壁)’은 여전히 높고 견고하다.

힐러리가 누군가. 대학시절 그의 첫사랑이었던 데이비드 루퍼트는 두 사람의 관계가 깨진 뒤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는 불타는 야망을 결코 표현한 적이 없다. 힐러리가 파트너에게 바랐던 점은 그런 야망이었다.”(Gail Sheehy, ‘Hillary's Choice’, Random House, 1999). 힐러리는 루퍼트 대신 그의 조지타운대 1년 선배인 빌 클린턴을 예일대 로스쿨 시절에 만나 결혼한 뒤 퍼스트레이디로서, 상원의원으로서 줄곧 현실 정치를 추구해왔다. 그의 능력? 앞으로 힐러리만 한 여성 대통령감이 나오기는 한동안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런 점에서 힐러리의 패배는 첫 여성 대통령 탄생을 통한 여권(女權) 신장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겐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대통령은 본인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시대적 필요성과 정치상황, 시운 등이 맞아떨어져야만 한다.

대선 후보가 못 됐다고 힐러리의 시대가 끝난 건 아니다. 72세의 매케인도 2000년 공화당 경선에서 조지 W 부시에게 패한 뒤 8년 만에 후보가 돼 정치인생의 정점에 올랐다.

대통령의 꿈을 일단 접어야 할 힐러리가 정치인으로서 어떤 길을 걸을지 관심이 쏠린다. 61세인 그의 정치행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기흥 국제부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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