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쟁은 우발적 충돌이 아니다. 치밀하게 계획한 북의 도발에서 비롯됐다. 같은 날 판문점에서 열린 유엔과 북의 장성급 회담에서 북측 대표는 오전 10시 회의가 시작되자 “오전 9시 15분 남조선의 선제공격으로 전투가 벌어졌다”고 핏대를 올렸다. 유엔사 측은 사실을 확인하느라 법석을 떨어야 했다. 알고 보니 북의 작전 예정 시간은 9시 15분. 그러나 9시 28분에야 시작되는 바람에 북측 대표가 실수를 한 것이다. 북의 해군 사령관이 연평도 맞은편 기지에서 직접 전투를 지휘한 것도 도발의 증거다.
▷김대중, 김정일 정권의 참전부대에 대한 대우는 정반대였다. 승전한 박정성 2함대사령관(소장)은 ‘참모총장 특별보좌관’으로 대기발령을 받아 6개월을 지냈다. 이어 군수 및 정보작전 참모부장, 군수사령관을 지냈으나 승진을 못한 채 퇴역했다. 반면에 김정일은 패전한 서해함대사령부 8전대(戰隊)에 쇠고기를 보내 격려했다. 8전대장은 3년 뒤인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을 일으켜 우리 함정을 침몰시키고 장병 6명을 희생시켜 김정일에게 보답했다.
▷제1연평해전이 있던 날에도 비료를 실은 남측 선박들이 해주항에서 대기 중이거나 남포항으로 가고 있었으며, 금강산 관광이 계속됐다. 북녘 땅에 무조건 햇볕을 쬐여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정책인가를 연평해전이 보여주었다. 당시 해군의 교전지침은 장병들의 손발을 묶어놓는 ‘선제사격과 확전 절대 금지, 북방한계선(NLL) 절대 고수, 슬기로운 대처’였다. 그런 어려움을 견디면서 우리해군은 승전했다. 9년 만에 세워진 전승비이지만 자랑스럽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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