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복어 毒

  • 입력 2008년 6월 23일 02시 57분


‘또래로 살아온 날끼리 어울려 복을 먹었다/맛이 기막히다며 쓴 모금에 복어 몇 점/부실한 젓가락을 투덜거리기도 했지만/내일 깨어날지도 의문인 채/몸이 가렵다느니 잠들면 끝이라느니/눈물도 배인 진한 웃음이 무르익어/그 밤의 감촉이 말랑했었다’(편부경 ‘왜 복어’ 중에서). 왜 사람들은 위험한 줄 알면서도 복어를 즐겨 먹을까. 절대미각과 목숨을 맞바꾸는 게임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요즘은 조리기술이 발달해 안심하고 먹지만 중국 북송(北宋) 때의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복어에 대해 ‘한 번 죽은 것과 맞먹는 맛’이라 했다.

▷복어 알에 중독된 사람들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영국 제임스 쿡(1728∼1779) 선장의 항해일지에 나온다. 그는 항해 도중 선원들이 복어로 추정되는 열대어를 먹고, 내장은 배에서 키우는 돼지들에게 주었다고 썼다. 이튿날 아침 선원들은 신체 마비와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고 돼지는 다 죽었다. 이 독이 바로 1909년 일본 과학자 다하라 요시즈미 박사가 복어 난소에서 추출한 테트로도톡신이다.

▷테트로도톡신은 복어의 알과 내장에는 있고 살코기엔 없다. 이번 쇠고기 파동 중에 정부 관계자는 “복어를 먹을 때 복어 독을 제거하고 먹으면 안전한 것처럼 미국 쇠고기도 특정위험물질(SRM)을 제거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비유한 바 있다. 물론 테트로도톡신은 맹독이다. 청산가리 독성의 1000배에 달하며 1kg짜리 복어에는 성인 33명을 사망케 할 수 있는 양이 들어 있다. 그래서 복어를 다룰 때는 반드시 숙련된 조리사에게 맡겨야 한다.

▷4월, 고속도로 갓길에 세워진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남자 2명의 사인이 테트로도톡신 때문으로 밝혀졌다. 골프를 치러 가던 길이었다는 사망자 중 의사인 김모 씨가 중국에서 이를 구입한 사실도 밝혀졌다. 테트로도톡신의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그가 치사량의 테트로도톡신을 왜 투여했는지 미스터리다. 의학계에서 테트로도톡신은 말기암, 편두통 환자 등의 진통제로 쓰이고 있다. 숨진 이들이 10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36홀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진통효과를 보려 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긴 하지만 과연 그랬던 것일까.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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