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4>아내를 모자로…

  • 입력 2008년 6월 26일 02시 58분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올리버 색스 지음/이마고

《정신(심리)과 물질(육체)은 서로 다른 영역이다. 둘 사이에는 뛰어넘기 어려운 벽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두 영역을 동시적으로 다루고 분리할 수 없도록 결합시켜 실행하는 연구가 가능하다면 범주가 서로 다른 그 두 영역을 접근시키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다양한 이웃 인정하고 이해하는 삶

올리버 색스는 참 고마운 존재다. 신경학 전문의인 그는 흔치 않은 ‘글 잘 쓰는’ 과학자다. ‘의학의 계관시인(poet laureate)’(뉴욕타임스)이란 별명이 어색하지 않다. 국내 출간된 또 다른 책, ‘화성의 인류학자’(바다출판사) ‘색맹의 섬’(이마고) 등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단지 필력만 뛰어난 과학자가 아니다. 환자를 인간으로 대하는 훌륭한 의사이다. 그는 환자를 볼 때 질병에만 관심 갖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주체 즉 고뇌하고 고통 받고 병과 맞서 싸우는 주체’를 보려 한다. 병의 치료보다 인간을 돕는 것이 의사의 주된 임무라고 생각한다.

“고차적인 신경학과 심리학 연구에서는 환자를 인간 자체로서 대단히 중시한다. 환자를 치료하려면 환자의 인간적인 존재 전체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분야에서는 병의 연구와 그 사람의 주체성에 대한 연구가 분리될 수 없다.”

그의 치료 방식은 ‘익살꾼 틱 레이’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레이는 다큐멘터리나 미국드라마 덕분에 국내에도 꽤 알려진 ‘투렛 증후군’ 환자다. 투렛 증후군은 도파민 과잉 등으로 갑작스러운 발작, 돌발 행동이나 욕설을 무의식적으로 표출하는 병. 레이는 다행히 도파민 대항제 ‘할돌’을 투여하면 투렛 현상이 멈췄다.

일반 의사라면 이쯤에서 치료가 끝났을 터. 하지만 저자는 외적 질환을 고쳤어도 레이가 마음의 병을 얻었음을 알아봤다. 사실 병은 오래도록 그를 괴롭혔지만 장점도 있었다. 투렛 증상 충동으로 두들기던 드럼은 수준급의 재즈 연주로 발전해 인기를 모았다. 남들보다 매서운 반사신경은 탁구에서 빛을 발했다. 하지만 약물 투여 뒤 레이는 평범해졌다. 무엇보다 병을 앓는 동안 형성됐던 그의 유머와 사나이다움, 강한 정신력이 무뎌졌다.

그렇다고 회사마다 해고당하는 원인이 된 질병을 내버려둘 수도 없는 일. 저자와 환자의 결론은 ‘주중엔 약물 투여, 주말엔 중지’였다. 레이는 이후 평일엔 ‘진지하고 차분한 시민’으로, 휴일엔 ‘경박하고 열광적이고 영감에 가득 찬 인물’로 이중생활을 한다.

“(여전히) 레이는 투렛 증후군 환자이며 할돌의 투여로 인공적인 균형을 강요당하고 그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지만, 그러한 상황을 적절하게 극복해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향수하는 자연 그대로의 자유라는 생득권을 빼앗겼는데도 그는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병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어떤 의미로는 그것을 극복했다.”

이 밖에도 책에는 참으로 많은 희한한 환자가 등장한다. 그들의 병은 완치하기도 실패하기도 한다. 표제로 등장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시각 인식 불능증’에 걸린 환자로 치료 자체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 책을 추천한 김연미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그런 다양한 타자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행 역시, 그런 만남을 위해 떠나는 것 아닌가. ‘아내를 모자로…’가 여행길, 근사한 배낭 속 친구로 어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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