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기피는 요즘 갑자기 생긴 현상은 아니다. 1980년대 초반에도 서울대 도서관의 대출 1위가 중국 작가 진융(金庸)의 무협소설 ‘천룡팔부(天龍八部)’라 해서 나라가 시끄러웠다. 그 시절 학생들은 전공 서적보다는 사회과학 책들을 많이 읽었다. 골치 아픈 사회과학 서적을 읽다가 머리를 식히려고 틈틈이 무협소설을 읽은 학생도 있었으리라. 아무튼 ‘고전이란 누구나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아무도 읽고 싶어 하지 않는 책’이라고 했던 마크 트웨인이 솔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대학생들이 주로 소설책만 읽는다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서울대가 고전 읽기 장려 방안을 내놓았다. 2005년 발표한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을 읽도록 학교수업과 홈페이지 퀴즈나 토론 등을 통해 적극 권장키로 했다. 생각난 김에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 목록을 찾아 내가 몇 권이나 읽었는지 체크해 보았더니 20권이었다. 그나마 고등학교와 대학시절에 읽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좋은 책 읽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하겠지만 역시 젊은 시절에 고전을 읽지 않으면 나중엔 더 힘들다.
▷서울대 권장도서에 목을 매는 곳은 정작 따로 있다. 논술학원과 수험생들이다. 권장도서에 논술문제가 많이 들어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2006년 종로학원이 전국 주요 18개 대학의 7년간 논술고사 제시문을 분석한 결과 ‘장자’가 7회 출제로 1위였다. 권장도서에 포함된 공자의 ‘논어’,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맹자의 ‘맹자’는 논술시험 단골 출제 2, 3, 4위를 기록했다. 대학에 들어가려고 고전을 읽는 것도 안 읽는 것보단 백배 낫겠지만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평생의 화두 아니겠나.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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