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촛불, 비폭력은 이들의 세상 뒤집기를 위한 마중물에 불과했다. ‘무시대’ 집단의 준법(遵法)을 기대하며 선의(善意)에 호소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무에 올라가 고기 찾기)다.
일몰 후 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集示法) 조항은 사문화(死文化)됐다. 상습적 야간집회를 문제 삼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처럼 돼버렸다. 하지만 알고는 있자. 1989년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에서 집시법이 전면개정됐다. 이를 주도한 것은 민주화세력이고, 정치권에선 김영삼(YS) 김대중(DJ) 양김(兩金)이었다. 이들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그럼에도 일몰 후 집회는 금지를 풀지 않았다. 국민 안전을 위해서다.
역사의 시계 되돌리는 혁명 企圖
2008년판 촛불집회가 어제로 60일째를 맞았다. 처음엔 평화적이었다고 하지만 수도(首都) 서울 한복판의 차도(車道) 점거가 일상화됐다. 많은 외국인이 밤마다 무법천지로 변하는 서울을 생생한 동영상을 통해 보고 있다. 국내의 KBS와 MBC는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장면을 골라 내보내지만 외국 언론은 객관적이다. 흉기로 경찰을 공격하는 시위대의 폭도화(暴徒化) 사실에 눈감지 않는다. 일본 유력지 아사히(朝日)신문도 ‘폭도화한 일부 시위대의 신문사 습격’ 같은 진실을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가 표방하는 ‘매력 있는 세계도시, 서울’의 이미지가 추락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세계인에게 Seoul은 곧 Korea다.
유모차를 끌거나 어린아이를 목말 태운 사람들이 전경과 대치한 시위행렬 앞줄에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은 외국인들에게 더욱 기이하게 보일 것이다. 인권(人權)을 운위하는 문명국에서, 그것도 21세기에 이런 광경을 목격하자니 분노가 인다. 한 지인은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정부나 세상에 아무리 한이 맺혔어도 내 자식이건 아니건 어린이 안전을 내팽개치고 무얼 얻으려는 것인가. 자발적이건, 누가 시켰건 사회가 용인할 수 없는 아동학대다. 이건 법 이전의 문제다.
‘무시대’ 집단은 집시법이니, 외국인의 눈이니, 아동학대니 하는 소리엔 눈도 깜짝 않을 것이다. 지금 이들은 ‘대선불복 정권퇴진’ 투쟁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국민의 신망을 크게 잃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임기 중 퇴진은 탄핵(彈劾)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탄핵은 국회 재적 과반수의 소추안 발의, 재적 3분의 2 이상의 소추안 가결,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 결정이 있어야 성립된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 같은 헌법 아래서 임기가 보장되는 대통령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대통령과 불화(不和)하지만 그 심판은 다음 대선에서 내리는 것임을 체득하고 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을 탄생시킨 ‘우(右)에서 좌(左), 좌에서 우’의 평화적 정권교체야말로 우리 국민이 성취한 민주화의 값진 선물이다.
‘무시대’ 집단은 노무현 정권과 이익을 공유했다. 노 정권은 불법을 생활화한 이들을 지원하는 데 세금을 후하게 썼다. 몇몇 좌파온상 대학의 교수들도 국민 혈세인 각종 학술진흥자금을 손쉽게 차지했다. 노 대통령은 친노(親盧) 군소신문과 방송들, 그리고 좌파언론단체들을 주류(主流)신문 무력화(無力化) 공작에 최대한 이용했고, 그 대가로 광고도 몰아주고 정권 안팎에 자리도 많이 만들어줬다.
憲政무너지면 대한민국 침몰
이명박 정부는 지난 정권 아래서의 이런 행태를 바로잡겠다고 했다. 그러나 ‘쇠고기’를 비롯한 초기의 실패 탓에 ‘구(舊)정권 기득세력 연합군’의 총공세에 만신창이가 됐다. PD수첩과 포털발(發) ‘광우병 괴담’은 기막힌 기폭제였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를 포기하지 않는 주류신문들마저 무릎 꿇는다면 ‘무시대’ 집단이 ‘헌정 중단’까지 손에 쥘지 모른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건국 60주년의 해에 ‘비운(悲運)의 나라’가 되고, 선진국 가는 길은 사라져버릴 것이다. 오늘의 아들딸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가난해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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