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건 예리한 질문을 마련하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집중을 지속하며 듣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날카로운 질문은 기자의 이름 아래 표가 나지만 경청의 공은 인터뷰이의 대화 속에 은연중에 드러난다고 믿어요.’》
대중스타의 삶을 보며 내 삶을 돌아본다
이 책은 영화주간지 ‘씨네21’의 영화기자인 저자의 인터뷰 기사 모음집이다.
저자는 인터뷰의 목적에 대해 미국 시인 앨런 긴즈버그의 일화를 소개한다. 인터뷰를 꺼리던 긴즈버그는 대중이 자신의 이름은 알아도 자신의 시를 한 편도 읽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시를 쓰는 것 같은 에너지를 기울여 인터뷰에 응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인터뷰’에 대해 “기껏해야 서너 번 만난 낯선 사람이 진심을 달라고 요구하다니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입니까?”라고 반문하지만 정작 이 책에는 여타 인터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이야기들이 보석처럼 숨어 있다. 책을 읽고 나면 이 책에 등장한 21명의 인물에 대해 전부터 잘 알고 있었던 듯한 생각을 갖게 할 만큼 인터뷰의 질문과 답변은 구체적이다. 배우 임현식 씨가 ‘한 지붕 세 가족’에서 하차하게 된 뒷이야기, 튀어나온 오른쪽 윗입술과 목소리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배우 이병헌 씨의 이야기, 외국어와 사투리 등 언어에 강박관념을 느낀다는 배우 김선아 씨의 고민, 연극영화과 실기 시험에서 두 차례 낙방한 송강호 씨의 과거 등 반짝이는 이야기가 많다.
안성기, 이병헌, 송강호, 나문희, 김혜수 씨 등 배우들과 출연작 캐릭터에 대한 해석부터 감독의 연출력까지 다양하게 나눈 이야기는 영화 마니아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인터뷰 전날은 잠을 자주 설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어렴풋이 짧은 인연이 끝나는 아픔을 느낀다”는 저자는 인터뷰의 준비 과정에 대해 ‘짝사랑의 축소판’이라고 설명한다.
“작품이나 인터뷰를 통해 신호를 보내온 인물들을 관찰하며 프러포즈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프러포즈가 받아들여지면 어떤 것을 보든 그와 연관짓게 되고 오감을 그에게 집중시켜 출연작과 과거 인터뷰를 복기하고 그 행간의 감정에 대해 주제 넘는 추측도 해봅니다.”
인터뷰 대상이 배우뿐 아니라 건축, 만화,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인물들이 선정되었다는 것도 이 책이 가진 장점이다. 인터뷰 대상 중에는 소설가 박민규, 디자이너 정구호, 라디오 DJ 전영혁, 건축가 황두진, 소설가 박완서 씨 등 튀는 영화계 인사는 아니지만 대중적인 인물도 포함돼 있다.
박민규 씨가 문단이 내린 비평에 대해 한 문학지에 ‘좃까라, 마이싱이다!’라고 반박성 글을 날린 배경, 박완서 씨가 6·25전쟁을 작품 배경으로 자주 고르는 이유처럼 해당 인물에 대해 대중이 갖고 있는 호기심을 시원하게 긁어 주는가 하면, 음악 못지않게 영화를 좋아해 서울 광화문 근처 씨네큐브를 즐겨 찾는다는 전영혁 씨의 취미생활, 헤어스타일과 화장에 얽힌 강금실 씨의 에피소드 등 흥미로운 신변잡기적 이야기도 소개돼 있다.
여행작가 오영욱 씨는 “21명의 인물이 자신의 삶을 나긋나긋 이야기해 주는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들이 들려주는 삶의 모습이 사뭇 진중해 마음이 뻐근해진다”며 “짧은 인터뷰로 구성돼 있어 여행길에 조금씩 읽어 나가기 좋다”고 추천 사유를 밝혔다. 이들의 삶을 더듬으며 여행하다 보면 문득 자신의 삶도 자연스럽게 돌아볼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까.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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