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적 경향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도 토론문화의 부재에 대해 우려가 높지만 민주주의의 본고장인 미국과 유럽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들 국가가 요즘 학교교육에서 강조하는 ‘모두를 위한 과학(science for all)’이라는 목표는 민주시민 육성과 연결되어 있다. 과거 과학교육은 소수의 영재를 발굴해 유능한 과학자나 기술자로 만들면 됐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제는 대상이 크게 넓어졌다. 보통 시민도 최소한의 과학적 소양을 갖추도록 교육의 방향이 바뀐 것이다.
▷교육을 통해 보통 시민의 논리적 과학적 사고 능력을 키워주지 못하면 국가가 값비싼 비용을 치르게 된다. 우리는 원시 자연이 아니라 과학문명이 창조한 ‘제2의 자연’ 속에 살고 있다. 이 안에서 과학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회 전체가 예기치 못한 허구와 환상에 사로잡힐 수 있다. 미국 쇠고기 파문이 그런 예이다. 두 달 동안의 촛불시위 과정을 되짚어보면 비과학적 허구와 반(反)이성에 휩쓸렸다는 허탈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한국은 1987년 민주화부터 20년이 지났는데도 대립하는 문제를 토론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한 것은 우리로선 뼈아픈 지적이다.
▷이번 사태를 주도한 세력은 ‘닫힌 진보’이다. 이들은 토론을 외치면서도 스스로는 자기만 옳다는 아집에 사로잡혀 있다. 광우병 위험이 과장됐으며 쇠고기 재협상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제 촛불시위에서 ‘국민이 주는 마지막 기회이니 재협상을 하라’며 억지를 부렸다. 이성적 토론이 불가능한 상대임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국민이 냉철하고 과학적인 눈으로 사태를 직시할 수밖에 없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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