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해]미국물가, 한국물가

  • 입력 2008년 7월 8일 02시 57분


미국에서 생활해 본 사람이라면 달러 가치가 ‘장난이 아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장바구니에 담을 음식료품이나 옷가지 같은 생활필수품이 한국보다 훨씬 싸다. 한국에서 10만 원이라면 큰돈이라고 생각하지 않다가도 미국에선 100달러를 들고 벌벌 떨 때가 적지 않다. 대형 쇼핑몰 같은 데서 100달러짜리 지폐를 내면 점원이 돈을 한참 들여다본다. 혹시 가짜가 아닌가 해서다.

대형 창고매장인 샘즈클럽이나 코스트코에서 팔리는 계란이나 우유 주스 과일 야채 같은 장바구니 품목은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미국에선 생필품에 대해 철저히 저가(低價)정책을 쓴다. 월마트에선 ‘Everyday Low Price(매일 최저가)’라는 간판을 내걸고 박리다매(薄利多賣) 마케팅 전략을 편다. 쇠고기 가격은 돼지고기 값과 비슷하다. 한국에서 비싸서 쇠고기를 많이 먹지 못한 사람이라면 돼지고기에 손이 잘 가지 않는다. 그 돈이면 쇠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기름값은 한국의 절반도 채 안된다. 땅덩어리가 하도 넓어 자동차가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기름 값을 싸게 매긴 것이다. 한국에서 휘발유 값이 비싼 이유는 세금 차이에다 SK에너지 GS칼텍스 등 4대 정유회사가 98%를 차지하는 독과점시장 구조도 한몫한다. 운전자가 직접 주유해야 하지만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할 만하다.

미국을 다녀온 여행객들이 잔뜩 사오곤 하는 종합비타민은 한국의 4분의 1 값이면 살 수 있다. 대형 유통매장에선 비타민 매장이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약국에서만 파는 한국과 비교하면 생소하다. 독점판매권을 가진 수입업자가 유통 마진을 많이 붙이는 바람에 한국에선 수입비타민 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수출한 그랜저 승용차를 미국에서 사면 1000만 원가량 싸게 살 수 있다. 그러니 적잖은 운송비를 물더라도 유학생들이 ‘Made in Korea’ 차를 다시 사오는 판이다. 비쌀수록 ‘좋은 차’라는 소비자 생각은 한국에서 수입차 회사의 고가(高價) 마케팅을 부추긴다.

스타벅스 커피 값은 한국이 최상위권이다. 미국에선 20달러면 괜찮은 와인을 즐길 수 있고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골프장 그린피는 30달러 정도면 골라 갈 수 있다.

백화점 세일 방식도 한국과는 딴판이다. 30% 세일부터 시작해 시간이 지날수록 50%, 70%까지 세일 폭이 올라가고 나중에는 이미 세일한 것에다 다시 10% 덤으로 할인해 주기도 한다. 독립기념일이나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안 사고는 못 배길 정도로 ‘떨이 세일’을 한다. 발품을 좀 팔면 중간 유통단계를 거치지 않는 아웃렛 매장에서 공장도값에 유명 브랜드 옷을 살 수 있다.

한국은 왜 이리도 물가가 비쌀까. 소득은 늘었지만 살림살이는 갈수록 팍팍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비싸야 잘 팔린다’며 귀족 마케팅을 하는 다국적기업들이 시장세분화(Market Segmentation) 전략의 타깃으로 삼은 곳이 바로 한국이다.

국경 없는 글로벌시대다. 고물가 현상이 제조회사의 폭리 때문인지 아니면 유통회사 횡포인지 먼저 파악해야 물가정책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 세금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 매겼는지 원점에서 짚어보자. 정부가 서민 물가를 잡겠다며 물가관리 품목 몇 개를 정해 가격동향을 모니터링한다고 해서 풀릴 문제가 결코 아니다.

최영해 산업부 차장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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