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택]광화문 商人

  • 입력 2008년 7월 11일 03시 00분


서울에서 광화문 일대만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도 드물다. 수백 년 역사를 간직한 경복궁 덕수궁 경희궁 등 고궁이 버티고 있는 가운데 대로변에 늘어선 정부청사를 비롯한 고층빌딩은 세련된 현대식 서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층빌딩 바로 뒤편에는 낡은 건물들이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다. 효자동 옥인동 삼청동 가회동 일대에는 수십 년 된 한옥들도 많이 남아 있다. 공무원과 직장인이 몰려 있고 교통까지 편리한 곳이어서 맛집과 술집이 많은 것도 광화문 지역의 한 모습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빌미로 한 촛불시위가 계속된 지난 두 달여 동안 광화문 일대는 밤마다 ‘시위대의 해방구’로 변했다. 시위대의 청와대 진격에 대비해 전경버스가 골목마다 배치되고 차량 통행마저 금지돼 이 지역 식당과 상인들은 개점휴업 상태로 애를 태웠다. 스파게티 전문점을 하는 임모 씨는 “월 200만 원의 순이익을 올리다가 촛불시위 때문에 하루 평균 매상이 10만 원으로 줄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음식점과 상인들이 매상이 절반 정도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오죽하면 상인들이 촛불시위 반대시위까지 했겠는가.

▷6일 KBS 1TV ‘생방송 심야토론’을 본 광화문 상인들은 더욱 ‘뿔’이 났다. 토론에 나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차장 송호창 변호사의 발언 때문이다. 송 변호사는 “장사 안 된다며 촛불 반대시위에 참가했던 상인들은 광화문 상인이 아니다. 광화문 일대 식당들은 실제로 장사가 잘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광화문 지역에 있는 편의점과 식당 등이 보통 오후 10∼11시에 문을 닫다가 지금 9시 전에 닫는다. 물건이 다 팔려서다”라고 상인들의 화를 돋우었다. 분명한 것은, 야간시위 중의 광화문은 촛불시위와 무관한 시민들에게 ‘어서 빠져나가야 할 곳’이었다.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시변)은 그제 촛불시위로 피해를 본 상인들을 위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기로 했다. 소송을 의뢰한 음식점 주인은 “손님이 너무 없어 잠도 안 오는 마당에 송 변호사의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나마 요 며칠 촛불시위가 사라지자 열대야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청계천의 밤이 숨 쉴 만해졌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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