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일자리 영향평가제

  • 입력 2008년 7월 14일 03시 01분


‘일자리 불임(不妊)’ 경제가 걱정이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늘기는커녕 줄어드는 추세다. 정부는 올해 전망치를 35만 명 선에서 20만 명 안팎으로 대폭 낮췄다. 경제 성장력이 둔화된 데다 성장률 1%가 만드는 일자리가 1990년대 6만3000명에서 2002년 이후 5만9000명으로 감소한 탓이다. 게다가 민간소비와 기업투자 부진까지 겹쳐 작년 28만 명에서 올해엔 18만 명으로 줄었다. 3분의 1이 사라진 것이다.

▷불황이 오면 서민들의 일자리부터 날아간다. 기업은 경비 절감을 위해 퇴직자의 자리를 충원하지 않고 비워 두거나 잔업을 줄여 수당지출을 줄이다가 덜 중요한 자리부터 없앤다. 대기업처럼 해외출장이나 기획사업 같은 게 많지 않은 중소기업들은 이 부문에서 경비를 줄일 여지가 없어서 결국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다. 취업정보업체 인크루트에 따르면 255개 중소기업의 상반기 채용은 1107명으로 작년 1761명보다 무려 37.1%나 줄었다.

▷대기업들은 채용을 늘려 친(親)기업적인 이명박 정부에 도움도 주고 생색도 내고 싶겠지만 자칫하면 말실수가 될까 봐 극도로 조심한다. 경제 5단체장이 3일 “하반기 신규채용을 10%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들이 당초 계획보다 인력을 늘려 뽑는 분위기여서 다른 기업들에도 채용 확대를 권고하겠다는 의미”라고 한발 물러선 것도 그래서다. 대기업들은 “올해 채용계획은 이미 확정됐는데 추가로 늘리는 게 가능한 일이냐”고 따졌다고 한다. 이처럼 불경기에 나온 채용 확대 약속은 미덥지 못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일자리 영향평가제도’ 도입을 정부에 건의했다고 한다. 법률의 제정, 개정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봄으로써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이나 최저임금법 확대 적용처럼 일자리를 갉아먹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책 영향평가제는 교통, 재해, 인구, 환경, 개인정보, 기술, 부패 등을 대상으로 해왔는데 일자리가 추가된다면 아무래도 정책결정자들이 더 신경을 쓰게 되지 않겠는가. 입으로는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고 하면서도 정작 우선순위에선 뒤로 밀리다 보니 이런 제안까지 나왔겠지만.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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