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이 그제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냈다는 공개서한을 읽다 보면 그때 그 대장놀이가 생각난다.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 사저(私邸)로 가져간 재임 시절 기록물 사본을 돌려주겠다면서 “이미 퇴직한 비서관, 행정관 7, 8명을 고발하겠다고 하는 마당이니 내가 어떻게 더 버티겠느냐”고 했다. 법을 따르겠다는 게 아니라 ‘부하’들을 생각해서 내주겠다는 것이다. 그는 “전직 대통령을 잘 모시겠다는 게 겨우 이거냐”고 현직 대통령을 힐난한 뒤 “두려운 마음으로 이 싸움에서 물러선다”고 했다. ‘싸움’이라는 인식이 놀랍다.
▷노 전 대통령은 편지에서 “법리(法理)를 가지고 다투어 볼 여지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재임 시절에도 그는 법리 다툼을 즐겼다. 선거중립의무 위반을 지적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경고를 자기 식 법리로 무시하다 헌정 사상 초유의 국회 탄핵소추까지 당했다. 지난해 4월 제정된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은 전직 대통령이 재임 시 생산된 기록물을 열람하려 할 때 우선적으로 편의를 제공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열람 편의를 제공토록 했지, 열람하기 불편하면 그냥 가져가도 좋다고 한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법은 ‘내 편할 대로’ 해석하는 게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신의까지 들먹이며 편지를 보내자 이명박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 기록물만 회수하고, 불법 무단 유출 행위는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진짜로 전직에 대한 예우인지, 아니면 ‘귀찮아서 피하기’인지 모르지만 그 틈에서 또 한 번 망가지는 것은 법의 권위다. 법치(法治)의 선봉이어야 할 권력부터 법을 ‘예우’하지 않는 나라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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