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잊혀진 전쟁

  • 입력 2008년 7월 26일 03시 01분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는 아직 종결되지 않은 전쟁이다. 3년 만인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됐지만 종전(終戰)이 아니라 정전(停戰)일 뿐이다. 55년 동안 전면전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크고 작은 북의 도발과 국지(局地)전쟁이 이어졌다. 실질적인 종전은 여전히 멀다. 우리가 지금 완전한 평화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북한 초병의 금강산 관광객 사살 사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쟁의 여진(餘震)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판문점이다. 군사분계선(MDL)을 표시하는 폭 50cm, 높이 5cm의 시멘트 턱을 중심으로 남북에 걸쳐 지은 회의실 안팎은 항상 팽팽한 긴장이 감돈다. 남북 경비병들은 시멘트 턱 양쪽에서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자세로 노려보고 있다. 군사회담이 열리면 북측은 삿대질과 고성을 일삼고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최근엔 북한 군인들이 테이블에 놓인 유엔 참전국 기(旗)를 뽑아 구두를 닦는 행패를 부려 아예 액자에 넣어 벽에 걸었다.

▷판문점과 155마일 군사분계선은 정전 55주년에도 변함없는 긴장의 연속이다. 그러나 판문점에서 불과 40여 km 떨어진 서울은 6·25가 이미 ‘잊혀진 전쟁’이다. 젊은이와 초중고교 학생의 상당수는 6·25가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 어느 나라와의 전쟁인지조차 모른다. 우리의 주적(主敵)은 북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대답한다. 6·25에 참전해 수만 명을 희생시키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해준 미국에 대한 배은망덕(背恩忘德)이 아닐 수 없다. 6·25의 교훈과 참전용사, 참전국에 대한 고마움을 되새기는 변변한 행사를 보기도 어렵다.

▷최근 미국 워싱턴에선 6·25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참전용사들을 기억하자는 행사가 즐비하다. 의회에선 최근 한국전쟁참전용사회(KWVA)를 공식 법인화하는 법안이 통과됐고, 7월 27일에 조기(弔旗) 게양을 의무화하는 법안도 제출됐다. 한국전쟁 참전비와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기념식이 열리고 참전용사 초청만찬도 예정돼 있다. 우리 장관급과 일부 국회의원이 서울 대신 워싱턴 행사장으로 달려간다. 6·25가 ‘잊혀진 전쟁’임을 실감케 하는 씁쓸한 풍경이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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