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민주공화국의 진짜 敵은 누군가

  • 입력 2008년 7월 29일 03시 00분


서울 광화문 부근에서 일하다 보니 길거리로 나가보지 않아도 밖에서 어떤 집회나 시위를 하는지 대충 알게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노래가 줄기차게 반복되면 이건 ‘이명박 아웃’ 데모다. 그제 새벽엔 폭력시위를 막던 경찰 2명이 종로 보신각으로 끌려가 웃통을 발가벗긴 채 20분간 몰매를 맞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맞다. 이는 헌법 1조 1항의 엄숙한 선언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2항이 이어진다. 그러나 헌법 1조가 경찰을 상습 린치(사형·私刑)하는 반법치(反法治) 강령으로 도용(盜用)되는 나라는 지구상에 더는 없다. 헌법상의 국민주권 원리를 왜곡하고, 헌법에 따라 국민이 창출한 국가권력을 불법폭력으로 갈아치우려는 기도(企圖)는 민주공화국에 대한 방자한 모독이요, 헌정을 파괴하는 혁명 불장난이다.

국민주권은 선거권과 피선거권, 이를 통한 대의(代議)민주정치, 그리고 부분적으로 대의제도를 보완하는 국민투표제도를 통해 구현된다. 정당의 자유, 복수(複數) 정당제도,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 정부에 대한 비판의 자유 등이 국민주권의 핵심인 정치적 기본권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권력의 원천이 국민이란 뜻이지, 국민이 직접 권력을 행사하거나 언제든지 권력을 뒤엎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결정하는 것이다.

헌법 왜곡 선동 度 넘었다

민주공화국은 국가의 정당성이 군주나 귀족이 아닌 국민에게 있고, 특정계층 특정신분이 아닌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균등한 정치적 지위를 갖는 나라다. 특정세력이 헌법에 따라 창출된 정권을 부정(否定)하면서, 불법폭력을 통해 정치적 기득권을 유지 또는 재창출하려는 것은 민주공화제 자체를 부정하는 행태다. 이들에게만 그 같은 특권이 주어진다면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은 균등한 정치적 지위를 잃게 된다. 이런 나라는 공화국이 아니다.

‘이명박 아웃 공작사령부’ 격인 이른바 광우병대책회의가 폭력 및 선동(煽動)으로 동아 조선 중앙일보 폐간운동을 벌이는 것도 국민주권에 대한 도전이다. 국민의 알 권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국민주권이 왜곡된다. 국민이 진실과 사실을 충분히 알아야 주권 행사를 위한 바른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다.

지금 KBS, MBC, 좌파신문, 일부 포털만 봐서는 광우병의 진실도, 폭력시위의 실체도 알 수 없다. 이것이 광우병대책회의가 바라는 세상일 것이다. 이른바 보수 주류(主流)신문은 이들의 선전 선동을 방해하는 적(敵)인 셈이다. 이런 적들을 폐간시켜야 헌법 유린도, 권력 교체도 쉬워진다. 현재의 KBS, MBC, 좌파신문은 광우병대책회의와 이해(利害)가 대강 일치한다.

이들에겐 자유민주주의, 법치, 시장경제를 통한 국리민복(國利民福)보다는 자신들의 집단이익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이명박 정권과 동아 조선 중앙일보를 싸잡아 적으로 삼음 직하다. 민주당도 그들 편에 섰다.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경영을 책임졌던 공당(公黨)이 반(反)헌법 세력에 동화(同化)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민주당의 정체성(正體性)이 이렇게 굳어지면 대안(代案)정당, 수권(受權)정당의 길이 더 아득해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 아웃, 주류신문 폐간’은 ‘도움 안 되는 큰놈 때리기’라 치자. 하지만 불법폭력시위 세력이 광화문 상인들을 인민재판식으로 협박하는 것은 정말 못된 짓이다. 광화문 어느 음식점 여주인은 시위 때문에 테이블이 텅텅 비어 참으려 해도 저절로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이런 상인들이 생존권을 지키려고 광우병대책회의를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소송을 내자 대책회의는 상인들의 명단과 주소가 드러나는 소장(訴狀) 내용을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올렸다. 일부 상인은 업소이름 전화번호 홈페이지 주소까지 추적당했다. 시위 때문에 막심한 피해를 본 것만도 억울한데 이제 소송 보복에까지 시달리게 됐다.

제헌 60년이 부끄러운 法治 무능

그런데도 이 정부가 외치는 ‘법치’는 물러터져 불법세력의 저항력과 투지만 키워주는 형국이다. 경찰병력 1만1000명이 시위대 1500명한테 조롱당한 지난 주말 상황은 일선 경찰의 문제를 넘어 최소한 경찰총수, 근본적으론 정권 차원의 문제다. 법치에 대한 언행 불일치, 무책임과 무능이 시위대한테 발가벗겨지는 경찰을 낳고 있다. 제헌 60주년, 건국 60주년의 대한민국이 왜 이 지경이 돼야 하나. 부끄럽고 화난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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