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상상력 먹고사는 도깨비 아세요

  • 입력 2008년 8월 2일 02시 56분


도깨비를 아십니까? 그는 하나밖에 없는 다리로 뒷걸음질을 능숙하게 합니다. 하반신이 보일 때는 있지만 상반신을 본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음습한 다리 밑이나 물레방앗간, 혹은 고갯길 묘지 근처에서 절망적이고 잔인할 정도로 외로움을 견디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문득 술 취한 사람이 나타났다 하면 거두절미하고 씨름부터 하자고 덤빕니다. 만날 때부터 비틀거리던 사람과 씨름을 계속해서 그때마다 이기는데도 상대가 지쳐서 얼이 빠져 쓰러질 때까지 계속 하자고 생떼를 씁니다. 견디다 못한 사람이 도깨비를 나무에 꽁꽁 묶어 포박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튿날 나무로 돌아와 보면 나무 기둥에는 난데없는 몽당 빗자루 하나가 묶여 있기도 합니다.

우직하고 변덕스러우며, 장난 좋아하고 멍청하다는 평판이 자자한 이 도깨비의 능력이 미치는 한계는 너무나 넓습니다. 황소를 순식간에 지붕 위에 올려놓는 가공할 능력을 가졌고, 솥뚜껑을 솥 속에 집어넣을 수 있는 마술적인 능력도 있습니다. 큰 바위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공기놀이를 하는가 하면, 동네 우물 속에 차 있는 물을 단숨에 마실 수 있는 어마어마한 뱃구레를 가졌습니다.

그는 자기 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당장에 알아챕니다. 잘만 사귀어 두면 열린 입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금은보화를 대중없이 안겨줍니다. 그러나 도깨비는 천성적으로 계산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금은보화의 현실적 가치가 얼마인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익살꾼인 데다 장난기가 심해서 사람을 희롱하여 가시덤불 속으로 유인해서 골탕을 먹이고 강물에 빠뜨려 허우적거리게 만들지만 치명적인 위해를 입히지는 않습니다. 먹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메밀묵 정도면 대만족이고, 조촐한 밥상일지라도 대접하면 보답은 엄청나지요. 신출귀몰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서는 너무나 검소하고 청빈한 생활을 유지합니다.

교활하고 이해 불가능한 존재로서 흔히들 도깨비를 지칭하지만 그는 포악스럽지 않고 야박하지 않으며 부패하지 않고 야만적이지도 않습니다. 비겁하게 사람을 내려치고 뒤로 빠지거나, 모습을 감추는 꼼수는 초저녁부터 쓸 줄 몰랐습니다. 내려치면 금은보화가 쏟아지는 몽둥이를 가졌으되, 치명상을 입히는 흉기인 쇠파이프나 도끼 따위는 비겁하고 야비해서 휘두른 적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혹은 멸시하는 도깨비는 우리가 도달하지 못하는 상상력의 정점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황소를 순식간에 지붕 위에 올려놓고, 솥뚜껑을 솥 안에 집어넣을 수 있는 괴력을 획득한 것은 상상력의 승리 없이는 해낼 수 없는 일입니다.

김주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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