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국군서울지구병원

  • 입력 2008년 8월 6일 02시 59분


서울 종로구 삼청동길을 걷다 보면 경복궁 맞은편에 나지막한 옛 건물이 나타난다. 정문엔 ‘국군서울지구병원’이란 간판이 붙어 있다. 생각 없이 지나치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79년 전인 1929년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으로 출발할 때만 해도 모더니즘 양식의 2층 건물로 유명했다. 그러다가 1930년대 말 태평양전쟁 초기에 증축돼 일제(日帝)의 ‘경성육군위수병원’으로 바뀌면서 현대사와 떼어 놓을 수 없는 인연을 간직하게 됐다.

▷1978년 문을 연 국군서울지구병원은 군인보다 전현직 대통령과 정부 고위 인사들이 주요 고객이다. 흔히 ‘대통령 전용병원’으로 통한다. 의료 인력과 시설, 예산은 각 지역 국군병원 등 다른 군병원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다. 환자는 극소수인데 인력과 예산이 다른 군병원의 몇십 배라는 점이 국회 국정감사 때 자주 지적됐다. 1979년 10·26사태 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당시 김계원 대통령비서실장의 등에 업혀 이곳으로 와 사망판정을 받았다. 최근엔 노태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입원치료를 받았다.

▷이 병원은 국군기무사령부(옛 국군보안사령부)와 같은 울타리 안에 동거하고 있다. 보안사는 1977년 창설 이후 한때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와 함께 독재정권을 떠받치는 두 기둥이었다. 1979년 12·12쿠데타로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안기부까지도 통할하는 최고의 권부(權府)로 등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곳을 더는 대통령 전용병원으로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기무사의 경기 과천시 이전에 맞춰 문화공간으로 바꾼다고 한다. 현대사의 격랑이 굽이쳤던 현장의 탈바꿈에 감회가 없을 수 없다.

▷대통령의 변고(變故)나 국가위기 상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곳은 청와대와 가까워 10·26과 같은 긴급 상황에서 보안 유지에 좋고 신속한 통수권 이양에 도움이 된다는 시각이다. 1963년 11월 22일 미국 댈러스에서 저격당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사망이 최종 확인되자 미 행정부는 시신을 워싱턴 베데스다 해군병원으로 긴급 공수했다. 같은 시각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린든 존슨 부통령이 대통령 취임선서를 했다. 한순간의 권력공백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조치였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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