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출생 성비(性比)

  • 입력 2008년 8월 7일 03시 01분


어떻게 하면 아들 딸을 골라 낳을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도 숱한 속설이 있지만 과학적 근거를 갖춘 건 별로 없다. 그래도 인구통계학적으로 확실하게 증명되는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는 전쟁 도중과 직후 남자아이들이 더 많이 태어난다는 것, 둘째는 전쟁 중엔 결혼하는 부부의 나이 차가 커진다는 점이다. 전쟁터에서 젊은 남자가 많이 희생되니 그럴 법도 하다. 영국 리버풀대 연구진은 추적 조사를 통해 나이 든 배우자를 둔 여성이 남자아이를 가질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원인은 다윈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한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는 붉은 사슴의 경우 젊고 건강한 암컷일수록 수컷 새끼를 낳는다. 우수한 유전자를 후손에게 많이 전달하기 위해서는 수컷 쪽이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사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된다. 권력의 상징인 미국 대통령은 보통 사람보다 아들을 훨씬 많이 낳았다고 한다. ‘X염색체의 비밀’의 저자 데이비드 베인브리지는 아들을 많이 갖게 해주는 게 성공한 남성에 대한 자연계의 보상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과학계에서 출생 성비를 둘러싼 비밀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으나 통계적으로 보면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약간 더 많이 태어난다. 성장기에 남자아이의 사망률이 높기 때문에 결혼적령기에 남녀 균형을 맞추려는 자연 선택의 결과다. 하지만 이런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남아 선호가 강한 상당수 문화권에서 갓 태어난 여자아이를 살해하거나 낙태를 시킨다. 인도의 일부 지방과 중국에서 가장 심하지만 우리나라도 그런 낙태가 적지 않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출생 성비가 여아 100명 대 남아 106.1명으로 25년 만에 처음으로 자연 상태(103∼107명)를 회복했다. 남아선호 의식이 약화되고 저(低)출산이 보편화되면서 인위적으로 딸 아들을 구별해 낳는 일이 줄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똑똑한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며 여아 출산을 장려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엄청난 변화다. 초등학교에서 여자 짝을 못 구해 남학생끼리 앉는 현상이나 신붓감 부족 현상도 조만간 나아질 것이다. 이제야 우리나라도 문명국가 대열에 들어선 것 같아 반갑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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