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조성된 청계광장에서 각종 대중문화와 예술행사가 이어지면서 이 일대 빌딩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행복지수가 높아졌다. 하지만 광장의 안온한 행복과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석 달 전부터 오후 7시 무렵이면 광화문 일대는 성난 시위대와 전경이 밀고 밀리는 황량한 거리로 바뀌었다. 출근길에 만나는 ‘닭장차’들은 만신창이가 된 몰골로 한밤의 격전 상황을 전해줬다.
황량한 市街戰석 달
1980년대 한국에서 격렬한 시위 장면을 목격한 리콴유 당시 싱가포르 총리는 회고록에 자세한 인상기를 남겨두고 있다. ‘한국인들이 시위를 할 때는 중세의 검투사처럼 플라스틱 방패를 들고 보호구를 얼굴에 쓴 전투경찰만큼이나 매우 조직적이고 훈련이 잘돼 있었다. 노동자와 학생들이 거리에서 경찰들과 싸울 때, 그들은 흡사 전쟁터의 병사들처럼 보였다. 그들은 타협하지 않는 격렬한 사람들이었고 거세고 폭력적으로 행동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태업 농성 파업을 일삼았으며 과격했다…일본의 노동조합은 사용자들과 아무리 격렬한 논쟁을 벌이더라도 자기 회사의 대외적인 경쟁력에 타격을 입히지는 않는다.’
리콴유 총리는 한국은 군부통치에서 민주정치로의 이행이 갑작스럽게 이뤄져 대중 집회와 노조의 불법파업을 통제할 수 있는 법적인 규제의 전통이 확립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1965년 말레이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를 일류 국가로 만들어놓은 지도자의 분석이 예사롭지 않다.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달러에서 거북이걸음으로 12년 만에 2만 달러를 돌파했지만 시위문화와 노사관계는 리콴유 총리가 목격한 1980년대에 시곗바늘이 멈춰 진전이 전혀 없다.
서울시는 청계광장과 경복궁 광화문을 연결해 프랑스 파리 개선문 앞의 샹젤리제처럼 국가 상징거리로 만들 계획이다. 차도 16차선을 10차선으로 좁히고 그 공간에 광화문광장을 만드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러나 1980년대식 시위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거리의 싸움꾼들에게 멍석을 하나 더 깔아주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광화문에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눈에만 보이는 글판이 하나 있다. 광화문 사거리 교보빌딩 글판에는 철따라 아름다운 시어(詩語)가 걸린다.
‘버려야 할 것이/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도종환 ‘단풍드는 날’)
‘떠나라 낯선 곳으로/그대 하루하루의/낡은 반복으로부터’(고은 ‘낯선 곳’)
‘어머니 저를 일찍 깨워주세요/모든 새해 중에서/내일은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될 거예요’(앨프리드 테니슨 ‘5월의 여왕’)
살벌한 전투적 구호와 싸가지 없는 막말이 난무하는 시절인지라 도심의 아름다운 시어가 더욱 돋보인다. 교보빌딩 글판은 1991년 교보생명 창립자 고 신용호 회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신 회장은 어린 시절 병마와 싸우느라 초등학교에 들어갈 기회를 놓치고 평생 독서로 지식을 연마했다. 배움과 독서에 대한 시골 소년의 갈증은 한국에서 가장 큰 책방인 교보문고와 광화문 글판으로 이어졌다.
도심의 아름다운 詩心
교보문고 영풍문고 같은 대형서점은 활자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인프라다. 광화문에 들렀다가 서점을 찾는 여유로움이 우리 문화를 살찌운다. 세종문화회관과 일민미술관 신문박물관도 광화문의 문화 지표를 높여주는 장소다. 덕수궁 경복궁 같은 고궁은 고도(古都)의 정취를 돋운다. 강남이 아무리 불야성을 이루어도 광화문이 갖는 국가 상징성을 넘보기는 어렵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더라도 국격(國格)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지지 않으면 천박한 졸부국가에 불과하다. 새로 조성하는 광화문광장에서는 확성기 시위와 닭장차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조용조용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모여 긍정의 언어로 희망을 노래하는 시심(詩心)이 활짝 꽃피기를.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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