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차유진]문화-역사 버무린 요리책을

  • 입력 2008년 8월 23일 03시 02분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요리책을 좋아하는 건 당연하지만 나는 유별나게 요리책을 좋아한다. 좋은 요리책을 만들고 싶은 욕심은 좋은 요리책을 많이 보고 싶은 욕심과 비례한다. 영국 런던에서 요리를 배울 때도 유명한 셰프의 요리를 먹어보기보다는 노팅힐의 요리책 전문 서점인 북스 포 쿡스나 옥스퍼드 스트리트에서 코번트가든까지 이어진 서점 거리의 포일스나 워터스톤스의 요리책 코너에 주저앉아 시간을 보낼 때가 더 즐거웠다.

새로 나온 책과 사야 할 책을 메모하고 한 권이라도 더 사고 싶어 서점마다 가격 비교를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곤 했다. 유명한 셰프와 TV 요리강사의 책부터 요리 평론서, 에세이와 음식 재료의 사진이 가득한 사전, 요리 용어와 조리과학을 다룬 책, 음식에 관한 역사와 이야기…. 가보지도 못한 지구 곳곳의 사람과 시장의 재료, 그들이 먹는 음식을 책에서 다 만나 볼 수 있었다.

근래 서점을 돌아보면 요리와 관련한 다양한 주제는 물론 역사와 과학까지 아우르는 전문적인 책이 요리코너에 망라된 외국의 경우와 달리 밥반찬을 주로 다룬 실용서 일색이어서 무척 아쉽다. 이전의 실용서는 유명한 가정요리 선생님이나 잡지에 자주 등장하는 요리연구가가 작업한 무크 스타일이 대부분이었는데 언제부턴가 값싸게 밥해 먹는 비법을 전수하는 실용서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책은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또다시 만들어진다. 물론 누구나 따라해 봄 직한 간략한 레시피를 담은 책도 중요하다. 누구든지 요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살림살이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는 건 분명 긍정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요리와 음식의 풍부한 역사와 문화적 차이를 소개하는 책은 거의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로 실용서가 너무 많다는 점이 문제다.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만들기보다는 값싸게 빨리 만드는 법만 배우게 된다면 진정 그 요리의 진가를 알기 어렵다. 음식은 한 나라의 문화이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오랫동안 인간의 온갖 지혜가 녹아 있는 역사의 산물이다. 그것을 이해하지 않고, 알맹이를 쏙 뺀 채 단순히 ‘그것과 비슷한 음식’으로만 섭취하려 든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음식을 적당히 맛있게 배를 채우는 영양분 이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요즘처럼 요리 자체는 물론 요리와 관련한 콘텐츠가 인기를 누린 적은 없을 것이다. 요리가 주제인 만화와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수많은 사람이 요리를 배우겠다고 유학을 떠나며, 조리과학고라는 특수고등학교까지 생길 지경이다. 그러나 요리책은 밥상과 살림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음식을 이해한다는 것은 한 나라의 문화를, 혹은 자부심 있는 셰프의 정성과 노력의 시간을 이해한다는 얘기다. 유행을 좇아 유명 레스토랑과 카페를 무의식적으로 오가기만 한다면 값비싼 돈을 주고 다리품을 판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한식의 세계적인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다른 나라의 음식과 문화는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요리는 인류학이다. 인류가 땅에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어져 온 문화이다. 역사 농업 원예 의학 에티켓 성(性)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연구 가능하며 소소하고 흥미로운 테마로 이야기를 풀어 나갈 수 있다. 오랫동안 역사와 문화를 연구한 학자와 요리전문가가 함께 쓴, 깊이 있는 내용의 책이 좀 더 다양하게 출간되면 어떨까. 물론 나부터 노력할 일이다.

차유진 푸드 칼럼니스트·손녀딸의 테스트키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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