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류샹의 교훈

  • 입력 2008년 8월 26일 03시 01분


베이징 올림픽이 낳은 비운의 스타는 단연코 ‘황색탄환’ 류샹(劉翔)이다. 류샹의 ‘상(翔)’은 ‘높이 날다, 뛰어 가다’는 뜻이니 그는 이름부터가 타고난 단거리 선수다. 황인종은 단거리에 약하다는 통념을 보란 듯 뒤집으며 그가 2004 아테네 올림픽 110m 허들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을 때 중국인은 열광했다. 당연히 광고계약이 폭주하면서 몸값도 치솟았다. 그는 호화주택을 사고 고급 외제차를 몰기 시작했다.

▷류샹이 19일 발목 부상을 이유로 경기를 기권하자 13억 중국인은 실망과 충격으로 할 말을 잃었다. 그럴 만하다. 만약 수영의 박태환 선수가 그랬다면 우리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류샹의 경기 포기로 그와 광고계약을 하고 촬영 중이던 기업들도 타격을 입었다. 나이키, 비자카드, 코카콜라, 캐딜락 등 20여 개 기업이 입은 손실만 10억 위안(약 1500억 원)으로 추산됐다. 이렇게 되자 비난의 화살은 류샹에게도 쏟아졌다. “그 많은 광고를 찍느라 훈련할 시간이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스포츠 스타를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고 한 중국 사회의 책임도 크다는 자성(自省)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류샹은 아테네 올림픽 직전까지만 해도 한두 군데 광고에만 출연했는데 베이징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그가 나오지 않은 TV 광고를 세는 것이 더 빠를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이번에 문대성 선수가 당선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도 출마했다. 이렇게 바쁘다 보니 훈련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는데도 국민의 기대는 식을 줄 모르니 부상 사실조차 공개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우리도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박태환 선수 후원 기업이 올림픽 중에 그가 나오는 광고를 찍으려 했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어서다. 박 선수가 경기 후 서둘러 귀국하려고 했던 것도 그래서라는 것.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IOC는 올림픽 중 선수의 상업적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위반하면 메달이 박탈된다. 기업은 스포츠 스타를 광고에 이용하고 싶고, 스타는 이를 통해 그동안 흘린 땀에 대한 보상도 받고 싶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서로 자제해야 한다. 자칫하면 선수의 생명도 끊어지고, 광고도 꽝이 될 수 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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