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남 라디오 방송인 평양방송은 14일 “우리 인민들은 그 어떤 광풍이 불어와도, 세상이 열백 번 변한다 해도 사회주의 조국을 끝까지 지키고 빛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만 군민(軍民)은 공화국을 순간도 떨어져 살 수 없는 어머니 품으로 여기고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애국의 길에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 나가고 있다”는 주장도 했다. 북한 매체는 체제 단속과 내부 단결이 필요할 때면 ‘어떤 광풍이 불어와도’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노동신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6회 생일 전날인 2월 15일에도 “이 세상에 그 어떤 광풍이 불어오고 하늘땅이 열백 번 뒤집혀진다 해도 김정일 장군님만 믿고 따르며…” 운운했다.
▷북한 정권 수립 60주년 기념일인 9·9절 행사에 김 위원장이 불참하면서 기정사실화된 그의 ‘건강이상설’이 여전히 갖가지 분석과 억측을 낳고 있다. 초기에는 “김 위원장이 뇌중풍(뇌졸중)으로 의식불명 상태”라는 얘기에서부터 사망설(說)까지 나오더니 최근에는 한풀 꺾였다. 우리 정부 관계자가 12일 “김 위원장은 양치질을 할 정도의 건강 상태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한 걸 보면 통치 불능의 상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신변 이상 때 받게 될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광풍’으로 보는 듯하다. 그러나 북한의 세습정권을 60년 동안 유지시킨 게 바로 주체사상의 광풍이었다. 그 광풍도 자유와 개방이라는 질풍노도 앞에 힘을 잃을 날이 오지 않을까. 평양방송이 ‘그 어떤 광풍이 불어와도…’라며 체제 사수(死守)를 강조한 것은 어쩌면 시대착오적 세습·전제(專制)·사회주의 광풍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의 질풍노도에 의해 소멸될 것에 대한 불안감의 표출 아닐까.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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