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풍경 20선]대합실의 추억

  • 입력 2008년 9월 23일 02시 59분


《“작품에 등장하는 기차, 패션, 커피 등은 결코 사소하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들은 ‘이미 언제나 문학의 영역 속에 들어와 있는 문학의 타자들’로서, 한 텍스트뿐만 아니라 수많은 텍스트들을 가로지르는 작품과 사회의 보다 육중한 의미를 날카롭게 발현하는 중요한 계기다.”》

기차-커피-패션에 매혹된 지식인

문학 연구는 최근 문화 연구로 외연을 넓히는 추세다. 문학을 특권적 글쓰기가 아닌 문화의 일부로 파악하는 이 관점에 따르면 문학은 당대의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이경훈 연세대 교수도 ‘문화로서의 문학’에 주목한다. ‘대합실의 추억’은 그 연구의 산물이다.

‘이경훈 평론집’이라고 밝히긴 했지만 엄격히 말하면 연구서다. 저자가 다루는 대상은 식민지시대의 문학과 풍속이다. 저자는 식민지시대 지식인들이 생산한 문학텍스트 속 문화의 풍경을 훑으면서 ‘근대성’이라는 치열한 테마를 탐색한다.

김동인이 단편 ‘마음이 옅은 자여’에서 ‘Y는 나를 러브한다’라고 적을 때 ‘러브’는 개화기 이전 남녀의 ‘촌무지렁이의 갈퀴 식 사랑’과는 다른 ‘세련된’ 감정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외래어의 사용이야말로 유학을 통해 서양의 학문과 문화와 접촉한 김동인이 이전과 다른 ‘근대’라는 시대를 인식한 증거다. “무식스러운 사랑함으로는 달라진 시대의 세련된 연애욕을 만족시킬 수 없음”(이광수 장편 ‘그 여자의 일생’)을 작가들은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빵은 카네코가 제일이요 찻거리는 팔진옥에 구비되었고 코오피는 동의 것이 진짬이라는 것을 횅하게 익혀버렸다. 빵 한 근을 사러 십릿길을 타박거릴 때도 있고 코오피 한 잔 먹으러 버스에 흔들린 때도 있었다.’ 저자는 이효석의 산문 ‘고요한 동의 밤’에서 주인공이 빵과 커피를 사기 위해 십리 길을 걷거나 버스를 타는 장면에 주목한다. ‘카네코’와 ‘동’이라는 상점 이름에서 근대적 욕망을 발견하면서 저자는 ‘근대란 바로 이런 풍속적 경험으로 형상화되는 것’임을 파악해낸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대합실의 추억’에 관한 글이 흥미롭다. 이 글은 ‘백수’에 대한 분석이다. 대합실은 지식인이 더 나은 교육을 받기 위해 떠나는 곳이자 노숙자 무직자의 세계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김기림이 시 ‘함경선 오백킬로 여행풍경’에서 ‘대합실은 언제든지 튜-립처럼 밝고나/누구나 거기서는 깃발처럼/출발의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한 장소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중요한 근대성을 찾아낸다. 근대 시스템이 본격적인 직업은 물론이려니와 무직이나 실직상태도 생산해낸다는 것, 증여(가문)보다는 교환(시장)을 중심으로 조직된 근대사회에서 무직자는 새로운 천민계급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장환의 시 ‘The Last Train’에서 대합실은 ‘청춘의 조각이 흩어져 있고/병든 역사가 화물차에 실리어’ 가는 곳이다.

학술적인 글모음이지만 책을 따라 읽다 보면 당시의 지식인들이 근대에 얼마나 매혹됐는지 와 닿는다. 시인과 소설가들은 봄의 훈풍이 아니라 ‘전등불’을 보고 밤거리로 나가고 가게의 라디오 소리,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레코드 소리에 생의 환희를 느낀다. 저자의 말대로 기차 패션 커피 같은 문학 속 새로운 기호들은 그 자체로 새로운 시대를 상징한다. 문학작품 속에서 근대는 이렇듯 생생하게 접촉되고 체험된다. 그것은 텍스트가 얼마나 시대를 살찌우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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