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일본어를 대단히 잘했다. 게다가 자주 소설 따위를 읽었던 까닭에, 식민지에 사는 일본 소년들이 들어본 적도 없을 것 같은 에도시대의 말투까지도 알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 누구도 한 번에 그가 반도인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다.’(나카지마 아쓰시 ‘호랑이 사냥’ 중에서)》
日작가들이 보고 느낀 ‘반도, 반도인’
이 책은 어떤 면에서 도발적이고 어떤 면에서 낯설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풍경을 일본 작가들의 문학 작품을 통해 역추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실린 네 편의 단편은 일제강점기 조선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일본 작가들이 당시 조선을 배경으로 (혹은 소재로 해서) 쓴 작품이다.
‘김장군’이란 소설은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과 영화 ‘라쇼몬’의 원작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조선 민담(전설)을 소재로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은 임진왜란 당시 김응서 장군이 계월향의 도움으로 고시니 유키나가란 일본 장수를 살해했다는 전설 속 영웅담을 기반으로 한다. 중요한 것은 소설 속에서 엿보이는 그의 비판적 역사 인식이다. 아쿠타가와는 소설의 후반부에서 상대주의적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질문을 던지며 일본의 자국중심주의적 태도를 꼬집는다.
‘그러나 역사를 꾸미는 것은 비단 조선만은 아니다. 일본도 역시 어린아이에게 가르치는 역사는 이러한 전설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한 번도 이런 패전 기사를 실은 적이 없지 않은가?’
일제 강점 이후 조선으로 이주해 온 일본인들의 생활을 그려낸 작품들도 있다. 이 땅을 생활의 터전으로 받아들이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거나 일을 하고 재산을 모으며 삶을 영위했던 평범한 일본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겐 사뭇 낯설다. 하지만 그것 역시 식민지 조선 풍경의 일부였을 것이다.
나카지마 아쓰시의 ‘호랑이 사냥’과 ‘순사가 있는 풍경’은 작가가 식민지 조선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들이다. 전자는 조선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한 일본인이 조선인 친구 조대환과의 관계 속에서 얻은 경험을, 후자는 조선인 순사의 눈에 비친 일제 강점 하 경성의 겨울 풍경을 그려냈다. 일본 작가의 작품임에도 이들 작품은 제국주의적 역사관을 옹호하는 대신 피지배자의 처지에서 시대를 바라본다. 작가의 구체적 체험을 바탕으로 식민 지배의 기만성 모순성 등을 짚어낸다.
일본을 떠나 조선에서 삶을 꾸려가는 일본인들의 애환을 다룬 유아사 가쓰에의 ‘망향’은 주제의식면에서 나카지마의 소설과는 다르다. 일본 소시민들이 타향에서 살아가는 소박한 모습을 다루고 있지만 내선일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읽힌다. 자녀들이 조선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마뜩잖게 생각하고 향수에 시달리는 모습이라든가, 조선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본 청년들이 신붓감은 내지(일본)에서 구해오는 세태 등 당시 모습을 사실감 있게 보여준다. 배경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조선인들과 조선 땅의 현실 등을 통해 당시 조선을 바라보던 일본인들의 생각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일본 작가들의 다채로운 시각으로 일제강점기를 보낸 우리 근대의 풍경을 재구성해 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내부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는 미처 조명되지 못했던 부분까지 비판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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