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문명]이슬

  • 입력 2008년 9월 26일 03시 00분


‘청정 이슬’이란 말처럼 이슬은 순수(純粹)의 상징이다. ‘가을이 첩첩 쌓인 산속에 들어가… 밤새의 추위를 이겨냈더니/접시 안에 맑은 이슬이 모였습니다/그러나 그 이슬은 너무 적어서/목마름을 달랠 수는 없었습니다/하룻밤을 더 모으면 이슬이 고일까…’ 시인 마종기는 시 ‘이슬의 눈’에서 맑은 언어를 길어 올리고 싶은 시인의 고통과 간절함을 이슬에 빗댔다. 이슬은 덧없음의 상징이기도 하다. 깨끗하고 정갈한 품성의 사람들을 ‘빗물과 이슬’로 자란다는 난초에 빗댄다.

▷환경운동연합 최열 전 대표가 24일 “시민운동가는 ‘이슬’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운동가도 최소한의 문화를 누리며 살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자신과 환경운동연합을 향한 보조금 횡령 수사를 ‘표적 수사’ ‘정치적 탄압’이라고 주장하며 눈물까지 보였다.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는 시민운동가들의 삶을 변호하겠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뉴스에 달린 인터넷 댓글은 비판 일색이다. ‘환경운동 하라고 준 세금이지 문화생활 하라고 준 것 아니다.’ ‘문화생활 하고 싶으면 남의 돈 말고 자기 피와 땀으로 벌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한 시민단체 대표는 “프리랜서 1인 운동가가 아닌 다음에야 최 대표처럼 거대 조직을 이끄는 관리자는 인건비와 운영비를 늘 걱정해야 한다. ‘이슬 마인드’가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다”고 말했다. 1993년 4월 설립된 환경운동연합은 등록회원 8만여 명에 회비 내는 실(實)회원만 3만여 명에 달하는 아시아권에서도 보기 드문 거대 시민단체다. 척박한 풍토에서 시민운동을 그만큼 일군 공로를 무시할 수 없다. 검찰 수사에 대해 광우병대책회의에 가담한 시민단체들을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행여 검찰 수사에서 시민단체 간부들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이 드러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국민의 세금을 지원받는 단체라면 영수증도 완벽하게 갖추고 회계도 투명하고 깔끔하게 처리했어야 옳다. 시민운동가들은 공익을 위한 봉사와 희생이라는 ‘이슬 같은 정신’을 갖춰야만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최 대표가 말한 ‘이슬’이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는 검찰 수사가 끝나 봐야 정확한 해석이 내려질 것 같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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